정답 없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합리화라는 방어기제
여기까지만 보면 합리화가 나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합리화는 우리 마음을 보호해 주는 자연스러운 방어기제예요. 가질 수 없는 것을 계속 원하면서 괴로워하는 것보다, 적당히 마음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더 건강한 경우도 많거든요. 사실 어디까지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합리화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아요.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이고, 그에 따라 가치관과 생각도 끊임없이 변하거든요. 20대까지는 자유가 가장 중요하지만, 40대에는 안정을 더 원할 수 있어요. 20대의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이 40대의 나에게는 합리화가 될 수도 있는 거죠.
삶에서 선택해서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못한 것을 비교해서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구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해요. 비교 대상 없이 자기 선택을 평가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기가 선택한 쪽의 가치를 높이게 돼요. 예를 들어 퇴사를 한 사람이 ‘퇴사하고 새로운 경험을 해 본 건 필요한 일이었어.’라고 말하는 건 진심으로 좋다고 믿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믿고 싶은 달콤한 레몬일 수도 있어요. 반대로 회사를 계속 다니는 사람이 회사 밖은 위험할 거라고 말하는 것이 진짜 만족인지 신포도인지 본인도 확실히 모를 수 있죠.
우리는 완벽한 정보 없이 변하는 자신을 안고, 되돌릴 수 없는 선택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예요. 그런 불확실한 세계에서 자기 선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인간의 중요한 능력이에요. 신포도든 달콤한 레몬이든, 그게 자기 안에서 작동하는 한 일종의 심리적 회복력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삶의 많은 경우에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보다 '이미 내린 선택을 최선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으니까요.
내 신포도와 달콤한 레몬을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나의 신포도와 달콤한 레몬을 타인에게 강요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점이에요. 특히 인터넷이나 SNS를 보면 이런 목소리를 쉽게 접할 수 있어요. "20대에 이걸 안 하면 무조건 후회한다.” “아이를 낳아봐야 인생의 진짜 의미를 안다.”, “결혼은 무덤이다.”, “이걸 해야 좋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 등등등
이런 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 그 안에는 그 사람 자신의 신포도와 달콤한 레몬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자신이 선택한 길이 옳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 혹은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 길의 가치를 깎아내려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 자기 합리화를 마치 보편적인 진리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거죠.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유독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 말에 휘둘리기가 쉬워요. 단호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는 마치 정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결혼, 출산, 학업, 커리어, 제테크와 같은 삶의 중요한 선택에는 한 가지 정답이 없어요. 누군가에게 달콤한 레몬이었던 것이 나에게는 진심으로 원하는 것일 수 있고, 누군가의 신포도가 나에게는 정말 별로인 것일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이 아무리 확신에 차서 "이걸 안 하면 후회한다"고 말해도, 그건 그 사람의 합리화이지 나의 진실이 아니에요.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목소리에 흔들릴 때, "이건 이 사람의 신포도 혹은 달콤한 레몬은 아닐까?"라고 한 발 물러서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단단해지고 진리를 가장한 누군가의 합리화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
내가 선택한 것만 경험할 수 있는 한 번 뿐인 삶에서 100% 칼로 잰 듯 정확하게 신포도와 달콤한 레몬을 구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이고, 적당한 합리화는 심리적 회복력이 될 수도 있죠. 하지만 합리화가 습관이 되어서,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못하는 것, 그래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인정하지 못하고, 별로인 것을 별로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곤란해요.
‘원하지만 가질 수 없어’라고 인정하는 건 꽤 아픈 일이에요. 그래서 ‘애초에 나는 이걸 원하지 않았어.’라고 마음을 바꿔버리는 게 훨씬 편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반대로 내가 내린 선택이 별로라고 느껴질 때 ‘내가 잘못 생각했어. 기대만큼은 아니야’라고 인정하는 것도 어려워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라면 더더욱요. 그래서 ‘난 최고의 선택을 했어.’라고 자신을 속이며 부풀리는 게 더 안전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계속해서 자신을 속이다 보면 합리화를 넘어서 자기기만이 될 수 있어요. 내가 뭘 원하는지 점점 모르게 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계속 느끼면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공허함을 느끼게 돼요. 끊임없이 합리화를 통해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데 에너지를 쓰다 보면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에너지는 남아 있지 않게 되고,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신뢰도 무너지게 되죠.
그래서 솔직함이 필요해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면 오히려 더 자유로워질 수 있거든요. ‘저 포도는 분명히 신맛일 거야. 나는 신포도가 싫어.’라고 합리화를 하는 것보다. ‘나는 저 포도를 원하지만 지금은 닿지 않아서 먹을 수 없네.’라고 솔직하게 인정할 때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나요. 포도를 먹고 싶긴 하지만 그 정도 노력은 하고 싶지 않으니 사과로 만족하자.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포도를 먹기 위해 사다리를 만들자. 라고 결심할 수도 있어요. 어떤 선택을 하든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다면 신포도인 척 외면하지도, 달콤한 레몬인 척 억지로 만족하지도 않아도 나답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