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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몇 걸음 걸으시나요?

2026.09.04 08:02 · 원문 보기 ↗
      

안녕하세요. 금요일의 심스키입니다.

여러분은 요즘 누구와 대화를 많이 하시나요? 요즘 제가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누는 친구는 사람이 아니라 AI인 것 같습니다. 하루 일과의 상당 부분을 AI와 보내고 있죠. 기사 아이디어를 묻고, 자료를 찾고, 가끔은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어느새 동료보다, 가족보다 더 자주 말을 거는 상대가 되어 있더군요. AI와 베프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베프에게 짜증을 내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미지 생성할 때 300KB 이하로 만들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는데, 자꾸 잊어버리는 겁니다. 300KB를 초과했다고 지적하면 AI는 참 사과를 잘 합니다. 그런데 사과를 해놓고 또 500KB짜리 이미지를 내놓습니다. 저도 모르게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라고 짜증을 냈습니다. 

AI는 또 사과를 합니다. 다음부터는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죠. ‘그래, 다음부턴 제발 말 좀 잘 들어라.’ 이런 생각을 하고 나면 소위 ‘현타’같은 게 옵니다. 

상대는 감정이 없습니다. 제가 언성을 높인다고 서운해하지 않고, 다정하게 말한다고 고마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같은 요청을 다섯 번째 반복하는 순간 명백히 짜증이 올라왔습니다. 이건 계산기가 3 더하기 5를 자꾸 9라고 우기는 걸 보고 화내는 것과 비슷한 걸까요. 아니면 후배 기자가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의 그 감정과 더 가까운 걸까요.

어제 한 로봇 회사 관계자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공장에 머리가 달린, 사람과 비슷한 형태의 로봇을 투입했더니 노동자들이 그 로봇을 부쉈다고 합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로봇에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자신들을 감시하는 게 아니냐고 여긴 거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능의 로봇을 택배 박스처럼 생긴 형태로 바꿔 넣었더니,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고 합니다. 카메라는 똑같이 달려 있었는데도 말이죠.

사람들은 사람을 닮은 것에는 사람을 대하듯 반응합니다. 감시당한다고 느끼고, 때로는 부숴버리기까지 합니다. 반대로 상자처럼 생긴 것에는 그런 감정이 잘 붙지 않습니다. 똑같은 카메라가 똑같은 데이터를 수집해도 말이죠.

공장의 로봇이 부서진 것도, 제가 채팅창에 언성을 높인 것도 결국 같은 착각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상대가 사람처럼 보이거나, 사람처럼 말을 걸어오면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것에 사람의 자격을 부여합니다.

저도 비슷합니다. AI는 그저 딥러닝으로 데이터를 학습한 모델일 뿐이고, 엄청난 GPU가 돌아가면서 다음 단어를 예측해 하나씩 이어붙이고 있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도 인간의 언어로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저는 상대를 사람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몇 번을 말해도 못 알아듣는다고 짜증을 내고, 사과를 받으면 그걸로 또 마음이 좀 풀리죠.

상자였다면, 그냥 계산기였다면 그렇게까지 짜증이 났을까요. 아마 아니었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안 그럴게요" 같은 말을 돌려받는 순간, 저는 이미 상대를 사람의 자리에 앉혀놓고 있었던 겁니다.

카메라 달린 로봇을 부순 노동자들도 아마 비슷했을 겁니다. 상자였다면 그냥 기계였을 텐데, 머리와 눈이 달려 있으니 그 시선을 견딜 수 없었던 거겠죠. 저는 로봇을 부수는 대신 채팅창에 짜증 섞인 문장을 썼을 뿐, 하고 있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입니다.

저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AI에 그대로 이식했습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고, 사과를 받으면 누그러집니다. 상대는 그 사이에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을 텐데, 저 혼자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완주한 셈입니다.

사람은 원래 그런 존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타던 자전거에 이름을 붙이고, 오래 탄 자동차를 처분하면서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고,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아무말 못 하는 고양이와 대화를 합니다. 다음 단어를 예측할 뿐인 확률 계산기도 친구처럼 대하죠. 

화를 낸 것도 저였고, 고맙다고 한 것도 저였습니다. 상대는 그 사이에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관계는 처음부터 저 혼자만의 독백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아마 앞으로도 AI에게 뭔가를 부탁하고, 짜증을 내고, 고맙다고 말할 겁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습니다. 어차피 이 대화는 독백이니까요. 이왕 하는 독백이라면, 화보다는 고마움 쪽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