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시작에 맞춰 가장 먼저 한 일은 다이어리의 첫 장을 펼치는 일이었습니다. 아직 손을 타지 않은 빳빳한 종이를 보듬을 때의 두근거림이란! 뒷장으로 갈수록 글씨가 제멋대로 흩날리곤 하지만 첫 장만큼은 한 글자 한 글자 단정하게 적고 싶어 연필을 꼿꼿하게 쥐었습니다. 특히 한 해의 다짐을 적을 땐 더욱 힘을 실었죠. 새 노트에 그런 결심을 적으면 왠지 끝까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자신이 생깁니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의 시작에는 늘 ‘문구’가 함께 했던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공부하기 위해 형광펜을 사고, 미뤄둔 책의 완독을 위해 연필 한 자루를 준비하는 것처럼요. 자잘하고 작은 문구일지라도 이들의 위력은 꽤 대단했습니다. 일단 문구를 사서 들고 온 날만큼은 책상 앞에 진득하게 앉아 시간을 보냈거든요.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으로 그 시작을 잘 열어주는 역할을 그들이 해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올해부터 처음 발행하는 포포레터도 문구의 힘을 빌려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문구를 좋아하는 이들의 다양한 시선들로 편지를 가득 채웠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뜯어보시길 바라며,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님의 메일함으로 찾아갈게요.
from.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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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구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곰곰이 시간을 되짚어 보니, 포인트오브뷰를 열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유치원생이었던 저를 마주할 수 있었어요. 당시 하루치 용돈은 100원. 저는 용돈을 받으면 바로 문구점으로 달려가던 아이였답니다. 지우개, 메모지, 펜, 스티커와 같은 문구를 구경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었어요. 문구점은 온종일 놀 수 있는 놀이터와 다름없었는데요. 쉴 새 없이 들락날락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가게의 왼쪽에는 펜이 있고, 오른쪽에는 스티커가 있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꿰뚫고 있는데도 문구점 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는 순간, 늘 마음이 일렁이고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새롭게 들어 온 건 없는지, 놓친 건 없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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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생이었던 저는 메모지를 모으는 데 한참 빠져있었어요. 하트 모양 메모지, 향기 나는 메모지, 메모지의 종류도 어쩜 그리 다양한지요. 그렇게 1년 동안 열심히 메모지 수집에 열중하던 어느 날, ‘판박이’라는 게 새로 등장했어요. 지금으로 얘기하자면 ‘신기술’을 탑재한 물건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러 종류의 판박이를 도화지 위에 원하는 대로 조합하면서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하는 게 큰 재미였습니다. 그렇게 판박이에 눈길을 돌리면서 더는 메모지가 필요 없게 되고, 판박이를 더 많이 사 모으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르자 저는 고민 끝에 갖고 있던 메모지를 모두 팔기로 결심했어요. 그간 모아온 메모지와 각각의 가격을 적은 종잇조각들을 챙겨 집 앞에 돗자리를 폈죠. 온종일 손님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소득이 없어 대신 어머니가 500원어치를 사주셨던 귀여운 일화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가 아마 제가 판매했던 첫 문구가 아닌가 싶어요. 그날 하루,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문구점을 열어 봤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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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되어서는 샌디라이온 스티커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샌디라이온 스티커는 다른 스티커들에 비해 주제도 다양하고, 색감도 예쁘고, 특유의 디테일함이 있었는데요. 마음에 드는 스티커는 2장씩 사서 하나는 쓰고, 하나는 모을 만큼 좋아했어요. 갖고 있던 샌디라이온 전용 스티커북 한 페이지마다 빼곡하게 채워 붙였던 기억이 납니다. 과일 스티커는 과일끼리, 동물 스티커는 동물끼리. 나름대로 분류를 정해서 스티커북 꾸미기에 정성을 다했죠. 그 스티커북은 저의 보물과도 같아서 늘 학교에 지니고 다녔는데, 어느 날 체육 시간에 그걸 잃어버린 거예요.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날 난생처음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 말았습니다. 제게 전부 같은 것이었는데 그걸 잃어버렸다는 마음에 도저히 학교에 있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만큼 ‘문구’는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의미가 컸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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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우연히 만년필을 사용해 보았는데, 일본어 획은 한글과 다르게 그림체에 가까워서 만년필로 그리듯 쓰니까 잘 써지더라고요. 그러면서 다양한 만년필에 관심이 생겨서 하나둘 모으게 되고, 만년필 애호가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게 되고, 또 만년필과 상성이 좋은 종이를 찾아 나서게 되고… 이렇게 문구를 통해 연결되고, 새롭게 알아가는 것이 저만의 익숙한 공부법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문구’는 어떤 것을 실행하고 시작하게 하는 포인트가 되는 것 같아요. 단순히 기능적인 면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와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문구를 통해 글을 쓰게 되고, 그림을 그리게 되고, 관심이 가는 분야에 더욱 몰두하고 깊이 파보게 되죠. 그런 행위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창의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다채로운 표현들이 탄생한다고 믿어요. 저의 이러한 믿음은 자연스럽게 여러분들 또한 다양한 도구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창작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포인트오브뷰에서 소개하는 도구들로 하여금 구현과 작용이 될 때가 가장 큰 기쁨이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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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라는 그의 나이도, 650점의 필통을 모아온 지난 45년도, 필통 박물관 ‘모우재’를 세우고자 했던 집념도. 나의 작은 열 손가락으로는 미처 헤아릴 수 없는 커다란 시간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매번 본 적도 가본 적도 없는 새로운 곳에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건 그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필통을 애정하는 순수한 마음이었다. 많은 이에게 전하고 싶다. 여기 ‘필통’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떤 할아버지의 눈이 여전히 반짝반짝 빛이 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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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느꼈죠. ‘아, 필통이 필통으로 그치는 게 아니구나. 이건 예술이다.’ 하고요. 더욱이 그걸 보고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잖아요. 단순히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값어치가 필통에 들어 있구나 깨달았어요."
"다른 취미보다는 문구를 수집하는 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죠. 부디 문구를 아껴 쓰고, 문구에 감사하고, 사명감을 갖고 대하길 바라요. 그렇게 문화가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필통 수집가의 세월>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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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를 깊이 애정하는 3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시작을 도왔던 문구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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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조금씩, 매일 쓰는 일기 회중일기(懷中日記)
문구인 김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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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흐지부지 되어버린 새해 초 다짐들을 다시 열어보면서 조금 시무룩해진다. 하지만 좌절하기엔 아직 이르다. 우리에겐 밝은 새해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크고 작은 도구들의 힘을 빌려 앞으로 나아가는 지극히 도구 중심형 인간인 나에게 새해는 다짐을 핑계 삼아 새로운 물건을 들이기 좋은 시기다. 대충 먹은 옥수수처럼 듬성듬성 비어있는 지난해 일기장을 바라보면서 올해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매일 쓰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들인 것은 하쿠분칸의 <회중일기>. '회중'은 품속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주머니나 품속에 넣고 다니는 작은 일기장이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사이즈에 매일 할당된 칸에 서너 줄만 쓰면 금세 가득 차 가볍게 기록하기 좋다. 쨍한 오렌지 컬러에 매해 커버의 동물이 바뀌는 것도 러블리 포인트. 올해는 회중일기 덕분에 매일 기록 생활 순항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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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수집의 시작 에밀리오 브라가 노트
스몰컬렉터 영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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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던 어떤 것들의 시작은 ‘오늘부터 00할 거야’와 같은 굳은 다짐이나 거창한 목표보다는 사소한 우연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여행지에서 마음에 쏙 드는 노트를 발견하는 일처럼.
리스본 여행을 갔을 때, 포르투갈의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가게에서 이 노트를 발견했다. 손에 착 감기는 크기, 두툼하고 단단한 표지와 미색의 내지, 옆면의 주황색 마블 패턴이 매력적이었다. 가게에서 나오던 길, 우연히 주운 사탕 껍질을 노트에 대어 보니 제자리를 찾은 듯 적당한 여백만 남기고 들어갔다. 그 모습이 꽤 마음에 들어 노트에 붙일 만한 것들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잎사귀, 기차 티켓, 깃털… 날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노트 위로 가져왔다. 그렇게 이 노트는 조각들이 주고받는 무언의 이야기들과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나의 작은 실험실이 되어주었고, 나의 첫 독립출판물인 《SMALL COLLECTING BOOK》으로 이어졌다. 이후의 여러 작업들 역시 이 노트를 채워가던 순간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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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꾹꾹 눌러 담아 펜 레스트와 만년필
응원대장 올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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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내어 시작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쓰고, 읽고, 간직해야 하는 편지 한 통에 나의 용기와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쓰는 것으로 한 해를 시작하기로 했다.
새 마음으로 새해맞이를 하자며, 아빠에게 미루던 병원 검진을 가자고 했던 2년 전. 그때를 마지막으로 아빠와 함께하는 새해를 맞지 못했다. 아빠 없는 두 번째 새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자고 마음먹는 것에 이렇게 용기가 필요했던 걸까. 올해 나는 새해의 첫 응원을, 아빠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작은 무척 웅장했다. 한 번도 쓰지 않은 깨끗한 만년필을 꺼내, 그 펜이 아름답게 놓일 포인트오브뷰의 펜 레스트를 준비하고, 아빠가 좋아하는 색의 잉크를 찾아 가지런히 놓았다. 그렇게 아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투명한 펜 안에 나의 마음을 가득 담아 빼곡히 쓴 편지를 접고, 펜을 내려두고, 나의 용기를 채운 시작을 응원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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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레터의 첫 편지를 꺼내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편지, 어떠셨나요? 님도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가진 문구들을 지니고 계시겠지요. 편지를 찬찬히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나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답장을 보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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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창작자를 위한 <포포레터>입니다. 창작의 풍경 속 다양한 관점을 함께 나눠 보아요.
Point of View letter@pointofview.kr 18, Yeonmujang-gil, Seongdong-gu,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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