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왜 맷 데이먼의 귀갓길에 과몰입할까?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를
보면서 유독 긴장했던 장면이 있어요. 세이렌의
바위를 지나는 장면이었는데요. 영화에서 세이렌의
노래가 직접 들리는 건 아니지만, 그 존재가
만들어내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장면 전체를
압도하더라고요. 오디세우스가 원통에 묶인 채 섬에
가까워질수록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몸에 힘이
들어가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도 불쾌한 느낌까지
들었어요.
이상하죠. 우리는 지금 안전한 극장에 앉아 있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영화라는 것도 알고
있는데요. 왜 화면 속 인물이 느끼는 두려움에
우리 몸과 뇌까지 반응하는 걸까요?
① 뇌는 영화 속 위협을 '위험 신호'로 읽어요
영화 속 위협적인 시각과 청각 정보가 들어오면
위험을 감지하는 뇌 회로가 켜지면서 자율신경계가
반응해요. 특히 오디세이처럼 사운드를 잘 활용하는
영화일수록 심장이 빨리 뛰거나 호흡이 달라지고 땀이
나거나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반응이 더
강해지거든요.
실제로 악당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청각 정보를
처리하는 뇌 영역의 역할이 더 두드러진다는 연구도
있어요. 흥미롭게도 악당이 나타나면 관객들의 청각
피질 활동이 비슷한 패턴으로 움직였는데, 연구진은
이를 위협적인 상황에서
소리와 감정적 단서를 파악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하는 과정으로
해석했어요.
소리가 꼭 크거나 무서워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세이렌의 노래가 직접 들리지 않더라도, "무언가
위험한 것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우리는
주변의 소리와 장면에 더 예민하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거죠.
이미지: Universal Pictures
② 이야기가 극적으로 흘러가면, 등장인물에 과몰입하게 돼요
그런데 이야기가 우리를 붙잡는 건 단순히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이야기가 극적으로 흘러갈수록 우리는 등장인물의
감정에 점점 더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실제로
극적인 이야기를 본 사람들에게서는 코르티솔과
옥시토신의 변화가 나타났고,
옥시토신의 변화가 클수록 등장인물에 대한 공감도 높았어요.
반면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이야기에서는 이런
반응이 두드러지지 않았고요.
이걸 연구자들은 ' Narrative
Transportation', 이야기
속으로 이동하는 경험이라고 불러요.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이고 등장인물에게 마음이 닿을수록
이야기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있게 되죠.
영화 속 주인공이 위험에 처하면 "저 사람
어떡해?" 하면서 손에 땀을 쥐고, 기쁜 일을
겪으면 나까지 괜히 뿌듯해지잖아요.
특히 오디세이의 이야기 구조는 우리의 기억과
감정에 꽤 잘 들어맞아요. 수많은 모험이 하나씩
이어지지만 그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중심 목표는
하나죠.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내 삶을 기억할 때도 여러 사건을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처럼 연결하는 경향이 있기에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밖에 없는
거에요. 그래서 오디세우스가 위험에 가까워질 때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던 것도 단순히 무서운 장면을
봤기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마치 그
순간을 함께 겪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일 거예요.
③ 혼자가 아니라 함께 움직여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같은 영화를 보고 있으면,
관객들의 뇌가 서로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마치 각자 따로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데도, 중요한 순간에는 여러 사람의 뇌가
같은 박자를 타는 것처럼요.
성균관대 연구팀이 같은 영화를 본 사람들의 뇌
활동을 비교했더니,
주인공이 등장하는 순간 관객들의 뇌 활동이 서로 비슷한 패턴으로 동기화됐어요.
그중에서도 타인의 행동을 추론하고 정보를 통합하는
데 관여하는 하전두회(Inferior Frontal
Gyrus, IFG)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어요.
왜 하필 주인공이 등장할 때였을까요? 이야기는
모든 관객에게 같은 정보를 같은 순서로 전달해요.
그래서 주인공이 화면에 나오는 순간, 관객들은
동시에 비슷한 추론을 하게 돼요. "지금까지 이런
사람이었으니,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할까?"
같은 생각이 같은 타이밍에 벌어지는 거죠. 그
결과가 하전두회의 동기화로 나타난 거예요.
결국 좋은 이야기는 사람을 그저 몰입하게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아요. 그 이야기가 우리의 뇌와 함께
경험하는 다른 사람의 뇌까지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게
하니까요. 우리가 영화를 '함께 본다'는 말이, 뇌
수준에서 함께 한다는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