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박수를 친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실리콘밸리 안에서 반박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속도를 늦추자는 주장이 과연 ‘순수한가’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 AI 차르인 데이비드 색스는 “속도 조절의 동기가 순전히 이타적인 척하지 말라”고
꼬집었습니다. 정말 위험하다고 믿으면 정부 허락 없이 스스로 멈추면 될 일인데 굳이 자기들이 원하는 규제 틀을 조건으로 내걸면서 속도 조절을 이야기하는 건 “협박”에 가깝다는 겁니다. 이 밖에도 “규제를 원한다면 그들이 규칙을 쓰면 안 된다”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고요.
더 근본적인 의심은 ‘사다리 걷어차기’입니다. 가장 앞선 모델을 쥔 앤트로픽과 오픈AI가 엄격한 안전 기준을 밀면 그 비용을 감당 못 하는 작은 경쟁자들이 프런티어에서 밀려난다는 논리입니다. 마치 메타가 스스로 소셜미디어의 규제를 이야기하면서 업계에 동참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엄격한 안전과 평가를 감당 못 하는 작은 기업들은 프런티어급 경쟁에서 탈락하게 되고 그 자리는 오픈AI와 앤트로픽이 차지하게 됩니다. 규제가 강해질수록
선두 주자에게 유리한 구조입니다. 오픈AI는 이처럼 업계가 나서서 개발 속도를 늦추는 게 반독점법에 걸리는지 의회에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계산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소송’인데요. AI가 사고를 냈을 때 앞으로 법원이 따져 물을 질문 가운데 하나는 “회사가 위험을 알고도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느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험을 알고 있었고 공개적으로 경고했으며 필요하면 개발 속도까지 늦추겠다고 했다”는 기록 자체가 방어 논리가 될 수 있거든요.
특히 상장을 앞둔 기업이라면 이 문제는 더 중요합니다. 상장사가 되면 AI 사고와 규제, 소송 가능성이 기업가치를 흔드는 ‘리스크’가 되거든요. 속도 조절론은 인류를 위한 브레이크인 동시에 어쩌면 앤트로픽이 준비하는 ‘안전띠’일 수도 있는 셈입니다.
여기에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의 발언도 눈길을 끕니다. 그는 AI 기업들이 위협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데는 이해관계가 숨어 있을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사이버보안 제품을 팔려면 먼저 사람들이 두려워할 ‘문제’가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 “수요를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제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14일(현지시간)에는
재미있는(?) 장면도 벌어졌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올인 서밋’ 무대에 있던 황 CEO에게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가 걸려 온 겁니다. 황 CEO는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돌려 청중에게 대통령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줬습니다.
분열된 실리콘밸리, 화내는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불거진 AI 위험론을 사실상 “사기(hoax)”라고 일축했습니다. AI 개발 속도를 늦추자는 주장이 정치적 목적에서 나왔을 수 있으며, 그렇게 브레이크를 밟는 것은 결국 미국의 경쟁자들에게 좋은 일만 시킨다는 논리였습니다. 황 CEO도 통화가 끝난 뒤 “대통령 말에 동의한다”는 취지로 화답했습니다. AI의 위험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빠른 혁신’과 ‘안전‘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식의 접근 자체가 잘못됐다는 겁니다.
다만 황 CEO도 위험을 경고하는 연구자들의 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앤트로픽을 떠나 공개적으로 우려를 제기한 제이컵 콕슨의 행동에는 “용기가 필요했다”며 그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위험은 듣되, 위험을 이유로 AI 개발 자체에 브레이크를 밟지는 말자는 쪽에 가까운 셈입니다. 이 ‘멈추지는 말자’는 논리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바로 중국입니다. “미국이 속도를 늦추는 사이 중국이 치고 나가면 어쩌냐”는 논리는 감속 반대론자들이 하나같이 꺼내는 카드입니다.
정작 중국은 미국 CEO들의 요구를 ‘공포 조장’이라 일축했는데요. 단순한 반발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모데이의 제안에는 중국을 겨눈 칼이 함께 들어 있거든요. 첨단 칩 수출을 계속 막고 중국 기업이 앞선 모델을 베껴 성능을 따라잡는 ‘증류’를 단속하자는 내용입니다.
중국으로선 ‘안전’이 곧 수출 규제를 조이는 명분이 될까 경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논쟁은 안전 논쟁인 동시에 패권 논쟁인데요. 2주 앞으로 다가온 미·중 정상회담에서 AI가 최상단 의제로 오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