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식물의 유전체 해독은 단순히 식물학적 성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글로벌 농업 패러다임이 화학 비료와 농약 중심의 화학 농법에서 유전체 데이터와 유전자 가위로 대표되는 바이오 애그테크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기후변화는 이미 식량 안보를 국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만들고 있습니다. 극심한 가뭄과 고온 속에서도 수확량을 보장할 수 있는 ‘기후 저항성 종자’를 누가 먼저 개발하고 특허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미래 글로벌 식량 공급망의 주도권이 갈립니다. 바이엘, 코르테바 같은 글로벌 농업 기업들이 가뭄과 이상고온을 견디는 ‘기후 저항성 종자’와 크리스퍼 유전자 교정 기술 확보에 대규모 투자를 쏟아붓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극한 환경 유전자 연구가 지구를 넘어 ‘우주’로도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역시 달과 화성 거주 프로젝트를 대비해 극심한 방사선과 온도 변화를 견디는 극지 식물의 생존 메커니즘을 우주 작물 재배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기후 위기를 돌파하는 기술이 인류의 우주 개척을 지탱하는 식량 인프라와도 맞닿아 있는 셈입니다.
각국의 규제 환경도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 GMO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국들은 외래 유전자를 넣지 않고 작물 자체의 유전자를 손보는 ‘유전자 교정 작물’에 대해서는 일반 전통 육종 작물과 유사한 수준으로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규제 혁신이 맞물리며 기후 저항성 작물의 상용화 속도가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이죠.
온실가스 배출 저감만이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수백만 년 동안 지구의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며 자연이 축적해 온 ‘생존의 지혜’를 과학기술로 읽어내고 활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남극의 거친 눈보라, 바위틈에서 묵묵히 꽃을 피워낸 작은 식물 하나가 인류의 식탁을 지켜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