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합의 이후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어떻게 바뀔까요. 이를 그려보기 위해 1990년대
담배 소송 이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이번 메타 소송은 담배 기업을 공격했던 방식을 상당 부분 빌려왔기 때문인데요.
1998년 미국 46개 주 정부와 주요 담배회사들은 대규모 합의를 맺었습니다. 담배회사들은 25년간 2060억 달러(약 283조원)가 넘는 돈을 내기로 했습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광고를 중단하고, 내부 문건을 공개하며, 금연 캠페인에도 돈을 내놓기로 했고요.
당시에는 담배 산업이 빠르게 쇠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담배 판매량은 이후 크게 줄어듭니다. 미국의 담배 소비는 합의 이후 절반 아래로 감소했고 고등학생 흡연율도 1990년대 후반 30%대에서 한 자릿수로 떨어졌습니다. 담배 광고는 거리와 스포츠 경기장에서 자취를 감췄고요.
개인에게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일은 더 이상 멋이나 자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됐습니다. 소송과 규제가 담배를 없애지는 못했지만 담배를 피우는 환경과 사회의 시선을 크게 바꿔놓은 겁니다.
그런데 담배회사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담배 판매량이 줄자 기업은 가격을 올렸거든요. 담배는 가격이 올라도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지 않는 상품입니다. 담배회사들은 판매량이 감소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가격을 올려 수익을 지켰습니다. 말보로를 판매하는 미국 담배회사 알트리아는 지금도 일반 담배 사업에서 6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올리고 있습니다. 테크 기업 수준의 영업이익률이에요.
규제도 예상 밖의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새로운 담배나 전자담배를 판매하려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연구자료를 만들고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작은 회사들은 이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은 아이코스 같은 제품을 개발하고 허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규제가 시장의 문턱을 높이면서 이미 자리를 잡은 대기업이 오히려 유리해진 겁니다.
담배회사들은 모습도 바꿨습니다. 담뱃잎을 태워 연기를 파는 회사에서 전자담배와 니코틴 파우치를 파는 회사로 옮겨갔습니다. 아이코스로 잘 알려진 필립모리스는 이제 순 매출의 40% 이상을 무연 제품에서 벌고 있어요. 규제를 피해 도망친 것이 아니라, 규제안에서 돈을 버는 새로운 방법을 찾은 셈입니다.
소셜미디어는 어떻게 바뀔까
소셜미디어 기업도 비슷한 길을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 합의금 180억 달러는 큰돈입니다. 하지만 메타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담배회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소셜미디어 기업들도 벌금과 합의금을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내야 하는 비용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더 큰 변화는 제품에서 나타날 겁니다. 합의 내용처럼 청소년 계정에는 사용 시간제한이 걸리고, 야간 접속과 학교 시간 알림이 차단될 수 있습니다. 나이 확인과 부모 관리 기능도 더 까다로워질 거고요. 외부 감사인이 기업이 약속을 지키는지 들여다보는 일도 새로운 일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소셜미디어를 조금 덜 재미있게 만들 겁니다. 그렇다고 메타와 유튜브, 틱톡이 사라질까요.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소셜미디어는 친구와 연락하고 뉴스를 보고, 영상을 즐기며, 물건을 사고파는 생활공간이 됐습니다. 사용하지 않기보다는 규제받으며 계속 사용하는 형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저는 오히려 이번 규제가 기존 기업들의 자리를 더 굳혀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이을 확인하고 청소년용 서비스를 따로 운영하며 외부 감사를 받으려면 많은 돈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메타와 구글 같은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스럽지만 감당할 수 있는 비용입니다. 하지만 이제 막 서비스를 시작한 작은 회사에는 넘기 어려운 벽이 될 수 있고요.
메타가 합의 직후 틱톡과 유튜브에 같은 조치를 도입하라고 요구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복잡한 규제를 견딜 수 있는 기업만 살아남는다면 메타의 지위는 오히려 강해질 수도 있습니다. 담배 규제가 대형 담배회사를 없애지 못하고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처럼, 청소년 보호 규제가 거대 소셜미디어 기업의 울타리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다만 기업들이 돈을 버는 방식은 조금씩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청소년을 오래 붙잡아 광고를 보여주는 방식은 예전보다 어려워지는 대신 플랫폼들은 성인 이용자를 위한 광고를 더 정교하게 만들고, 쇼핑과 구독, AI 서비스 같은 새로운 수익원을 키우려 할 겁니다.
메타가 최근 성장의 중심을 AI로 옮기고 있는 것도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즉 청소년을 미래의 고객으로 만드는 일이 지금보다 어려워진다면, 이미 고객인 성인들을 더 중독시키고, 그들이 더 돈을 쓰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성인들의 소셜미디어 중독이 지금보다 심해지게 될텐데, 그럼 과연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