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 🐣나구리입니다. 오랜만에 오프닝으로 인사드리네요.
영화를 보다 보면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 속에 질문을 남겨놓았을 때인데요.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생각을 잠시 의심하게 만들거나 익숙했던 감정을 조금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그런 익숙한 믿음을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콘텐츠들을 모아봤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삶의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낯선 공포가 되는 포크 호러부터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던 삶의 선택과 감정, 관계에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까지요.
어쩌면 좋은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는 영화만이 아니라 영화를 본 뒤에도 나만의 답을 오래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영화한잔도 님의 마음에 작은 질문 하나를 남길 수 있길 바라며 영화한잔 97호 시작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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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화한잔
1. 콘텐츠 알고리즘 | 🕯️ 낯선 믿음이 공포가 되는 순간, <위커맨>과 <미드소마>
2. 티중진담 | ❓ 질문을 남긴 영화들
3. 쿠키 한 입 | 🛼 Do You Rememb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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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믿음이 공포가 되는 순간, <위커맨>과 <미드소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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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커맨>과 <미드소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에디터 🫧에테르입니다.
님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무엇인가요?
저는 여러 영화 장르 중에서도 공포영화를 특히 좋아하는 편인데요. 여름 하면 또 무서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번 여름이 끝나기 전에 호러 장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사실 호러는 단순히 ‘무서운 영화’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엔 꽤 폭이 넓은 장르입니다. 공포를 만들어내는 방식에 따라 슬래셔, 고어, 오컬트처럼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익숙한 방식의 공포에서 조금 벗어나 보려고 합니다.
낯선 곳, 오래된 믿음과 풍습, 그리고 그들만의 규칙 속에 놓인 외부인.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이 나에겐 기괴하게 느껴지는 공포.
바로 포크 호러(Folk Horror)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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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 호러는 이름 그대로 민속과 전통에서 공포의 소재를 가져오는 호러 장르예요. 오래된 풍습과 신앙을 지키는 폐쇄적인 공동체가 등장하고, 그들만의 규칙과 의식이 공포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외부와 단절된 마을이나 섬처럼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닫힌 공간, 이교적 신앙, 희생 의식 같은 요소가 자주 등장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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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이들이 언어 자체가 통하지 않는 낯선 존재가 아니라, 같은 말을 쓰면서도 그들만의 규칙과 믿음에는 외부인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점이에요. 바로 이 간극이 포크 호러 특유의 불안감을 만들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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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포크 호러의 특징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1973년 로빈 하디 감독의<위커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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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소녀 ‘로완 모리슨’을 찾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외딴 섬 ‘서머아일’을 찾은 경찰 하위는 섬에 도착하자마자 기묘한 분위기를 느낍니다. 주민 모두가 ‘로완 모리슨’이란 아이를 모른다고 답하지만, 섬 조사를 이어가며 그녀가 실제로 이곳에 존재했다는 흔적을 발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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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아일에는 기독교와 다른 이교적 신앙과 의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하위는 이들의 풍습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지만, 오랫동안 자신들만의 믿음을 지켜온 섬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하위야말로 낯선 이방인일 뿐이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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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신앙에 대해 알아가던 하위는 점차 로완의 실종이 섬의 오래된 의식과 관련되어 있음을 의심하고,진실을 밝히기 위해 마을의 큰 축제에 참가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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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공동체, 낯선 의식, 그리고 그들의 축제에 참여한 외부인.. 여기까지 들으니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지 않으신가요?
네, 바로 아리 애스터 감독의 <미드소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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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소마>는 가족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진 대니가 연인 크리스티안과 그의 친구들을 따라 스웨덴의 외딴 마을 ‘호르가’를 찾으면서 시작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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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에 한 번 열리는 하지 축제를 보기 위해 찾아간 이들은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에서 점차 그들만의 낯설고 기이한 의식과 풍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축제가 이어질수록 일행은 하나둘 사라지고, 마을의 의식은 점점 노골적인 모습을 드러냅니다.
낯선 공동체에 발을 들인 외부인. 두 영화는 비슷한 설정에서 출발하지만, 그 공동체에 스며드는 방식은 정반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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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커맨>의 하위는 마을의 종교 의식을 비합리적이고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기독교적 기준으로 그들을 교정하려다 공동체를 위한 재물이 되죠.
반면 <미드소마>의 대니는 호르가의 의식을 경험하며 점차 그들과 감정을 공유하고, 결국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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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두 영화는 폐쇄적인 공동체가 외부인을 대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 바탕에는 포크 호러라는 공통된 뿌리가 있습니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보고 난 뒤에는 비슷한 찜찜함을 남기죠. 어쩌면 기이하고도 공포스러웠던 그들의 세계에 어느 순간 조금씩 빠져들고 있다는 데서 오는 감정인지도 모릅니다. 불편하면서도 자꾸만 시선을 빼앗기는 것, 그것이 바로 포크호러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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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도 익숙한 공포영화가 지겨워졌다면, 다음엔 조금은 낯선 공포를 골라보세요.의외로 취향에 꼭 맞는 장르를 발견하게 될지도 몰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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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TPO
Time: 해 질 무렵, 어스름한 저녁 🌅
Place: 불을 끈 조용한 방 🕯️
Occasion: 기묘한 분위기에 천천히 빠져들고 싶을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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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들의 콘텐츠 추천 : 기묘한 세계를 담은 콘텐츠
🍀 가든: 탈출구 없는 아름다운 감옥에 갇힌 이들, 영화 <비바리움>
😎케이: 열심히 살수록 더 이상한 곳으로 빠져드는, 영화 <성실한 앨리스>
🐢셩: 평범한 일상 아래 서늘하고 기묘한 평행우주,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나구리: 이름을 빼앗긴 채 신들의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영화<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현: 원조 인셉션, 영화 <파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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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보던 콘텐츠만 보시나요? 이 콘텐츠는 어떠세요? 당신이 몰랐던 새로운 취향을 찾아드립니다! 재미있는 콘텐츠가 필요할 땐 콘텐츠 알고리즘을 찾아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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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가든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토론 동아리에 소속되어 독서 토론을 경험했습니다.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정해진 발제를 중심으로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는데요. 같은 책을 읽었음에도 서로 다른 생각을 들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제가 바라보는 세상의 범위도 조금씩 넓어졌습니다.
영화도 책처럼 우리에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동진 평론가님의 한 문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영화는 술 같은 것이고요, 책은 물 같은 것입니다.
책은 우리를 차갑게 만들어 주고, 영화는 우리를 뜨겁게 만들어 줍니다.”
영화가 우리를 뜨겁게 만든다면, 그 열기가 식은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저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독서 토론의 방식을 빌려, 영화 한 편과 그 영화가 제게 남긴 하나의 질문을 함께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님은 아래 질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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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지금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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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질문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일명 <에에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아시아계 이민자 에블린은 세무조사와 가족 간의 갈등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멀티버스의 존재를 깨닫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됩니다.
엄청난 B급 감성과 발칙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영화이지만, 그 안에는 현대인이 자주 마주하는 허무주의와 가족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에디터 가든의 인생 영화 중 하나입니다.)
<에에올>에서 다중우주, 즉 멀티버스는 영화의 핵심적인 장치입니다.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상상에서 출발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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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에게도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웨이먼드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 에블린이 있는가 하면, 미국으로 가지 않고 고향에 남아 다른 삶을 살아가는 에블린도 있습니다. 또 어떤 우주에서는 요리사가, 어떤 우주에서는 영화배우가 되어 살아가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를 경험합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내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에는 지금보다 더 행복한 내가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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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여러분은 지금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케이: 억만장자 케이...? 솔직히 너무 유혹적인데...? 하지만 지금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든 것들이 함께 있어서 다 털고 갈 수가 없다…
✚미현: 네. 아마 똑같이 살아갈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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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서늘하고, 조금은 충격적인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 떠오른 질문입니다.
여행가이자 여행작가로 자유로운 삶을 즐기던 에바는 아이가 생기면서 삶이 180도 달라지게 됩니다.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에바는 점점 지쳐가고, 아들 케빈의 이유 모를 반항과 교묘한 행동으로 더욱 힘들어집니다. 에바는 케빈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지만 왠지 모르게 두 사람의 사이는 계속 어긋나는 것 같죠. 그리고 세월이 흘러 청소년이 된 케빈은 감당하기 어려운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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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마주한 엄마와 아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를 집요하게 바라봅니다. 특히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에바의 모성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엄마의 사랑’과는 조금 다릅니다.
에바는 갑작스럽게 아이를 갖게 되면서 자신이 추구하고 원했던 자유로운 삶에서 멀어집니다. 유난히 많이 우는 아기 케빈을 달래는 일은 쉽지 않았고, 에바에게는 아기의 울음소리보다 차라리 공사장 소음이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결국 에바는 꾹 참아왔던 감정을 케빈에게 내뱉습니다.
“난 네가 태어나기 전에 더 행복했어. 너도 알지?”
우리는 흔히 모성애를 본능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케빈에 대하여>는 그 익숙한 믿음에 질문을 던집니다.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엄마가 된다는 것은 곧 모성애를 갖게 된다는 뜻일까? 어쩌면 영화가 말하는 것은 모성애가 본능인가 아닌가에 대한 단순한 답이 아니라, 사랑조차 모든 사람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감정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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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모성애가 본능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에테르: 본능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본능이라면 누구에게나 비슷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하는데 실제 감정은 단순하지 않으니까요..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과 사랑한다는 감정은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케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엄마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이 아이에 대한 사랑을 더 크게 만들기도, 때로는 조금씩 사라지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에바도 너무하긴 했지만 케빈같은 아이는 정말,,,어떡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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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루먼 쇼>를 보고, 현재 제가 살아가는 것도 어쩌면 하나의 쇼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트루먼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TV 쇼의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트루먼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작은 섬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30세 보험회사원 트루먼 버뱅크. 어느 날 하늘에서 조명이 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기이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지난 30년간 자신의 일상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조금씩 수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하죠. 그리고 결국 트루먼은 자신이 살아온 세계의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이 평생 살아온 곳은 진짜 세상이 아닌 거대한 세트장이었고, 자신은 한 편의 TV 프로그램 속 주인공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믿어왔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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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은 세트장의 끝에서 프로그램의 기획자와 마지막 대화를 나눕니다. 기획자는 트루먼에게 거짓으로 가득한 바깥세상보다 자신이 만들어준 세상이 더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트루먼은 그 말을 뒤로하고 자신이 살아온 행복한 가짜 세상을 떠납니다. 저는 문을 나선 트루먼의 삶이 과연 행복할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진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에게는 이전과 같은 행복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트루먼은 진실을 선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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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면 진실은 필요할까요?
어쩌면 진실의 이면에서 행복이 사라지더라도, 우리는 진실을 선택해야 할까요?
☘️가든: 으!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진실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평생 진실을 모르고 가짜 속에서 행복하다면, 그 행복도 가짜가 되는 것 같아요. 진실이 아주 쓰고 아픔을 주더라도, 저는 진실을 마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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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기억도, 아름다운 기억도 모두 기억입니다. 하지만 만약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어떨까요? 아주 고통스러운 기억 하나를 골라 완전히 없앨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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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은 사랑과 기억에 대한 영화입니다.
조엘은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이 자신과의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 역시 클레멘타인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합니다. 기억을 삭제하는 과정에서 조엘의 머릿속에서는 클레멘타인이 조금씩 사라져 갑니다. 처음 만난 순간, 사랑이 시작된 순간, 행복했던 기억들. 그리고 가슴 깊이 각인되어 지우고 싶지 않았던 추억마저 하나씩 사라집니다.
그제야 조엘은 깨닫습니다.
아픈 기억만 지우려고 했지만, 그 기억에는 행복했던 순간도 함께 묶여 있었다는 것을.
그렇다면 아픈 기억을 지운다고 해서 정말 그 아픔까지 사라지는 걸까요?
영화의 마지막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다시 만나게 됩니다. 서로의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자신들의 관계가 다시 같은 결말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서로를 선택합니다.
어쩌면 <이터널 선샤인>은 기억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잃더라도 다시 사랑할 수 있는가를 묻는 영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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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으신가요? 그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지우시겠습니까?
🐢셩: 아무리 아픈 기억이라도 지우지 않는 쪽을 선택할 것 같아요. 지우고 싶을 만큼 괴로운 순간이라 해도 결국 그 기억과 감정들마저도 지금의 나를 만든 일부라고 생각해요! 아픈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게 당장은 버겁더라도 그 통증을 견뎌낸 시간 덕분에 어떤 경험을 하든지 더 깊게 이해하고 또 다른 행복을 알아채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가든: 저도 🐢셩과 비슷한 의견입니다. 고통스러운 기억도 제 일부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버겁지만 그 기억은 경험이 되어 제 삶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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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의 영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지금의 삶을 선택할 것인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사랑을 본능적으로 갖게 된다는 뜻인지, 행복한 거짓말과 불편한 진실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그리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고도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 질문들에는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좋은 영화란 정답을 알려주는 영화가 아니라, 극장을 나선 뒤에도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영화를 한 편 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고 잠시 앉아 있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세요.
“나는 어떻게 생각하지?”
정답은 없어도 괜찮습니다.
영화가 남긴 질문에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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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코너 <쿠키 한 입 🍪>은 영화 마지막 쿠키 영상처럼 짧고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에디터 선정 콘텐츠를 다룹니다! 간단하게 즐기다 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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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나구리입니다.
이번 주 쿠키 한 입에서는 대사 한 줄 없이 오열하게 만드는 영화 <로봇 드림> 속 장면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평생 함께 할 줄 알았던 사람과의 기억을 어느 순간 지나간 시절의 한 장면으로 남기는 경험을 합니다. 그런 인연을 시절인연이라고도 하죠. 저는 이 단어가 참 아쉽고 쓸쓸한 단어로만 느껴졌는데요,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만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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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가던 외로운 도그는 어느날 TV 광고를 보고 친구가 되어줄 로봇을 주문합니다. 그렇게 만난 두 친구는 평범한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죠. 하지만 함께 놀러 간 해변에서 로봇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해수욕장마저 폐장하면서 둘은 뜻하지 않은 이별을 맞게 됩니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동안 계절은 흐르고 두 친구는 결국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죠.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유독 다르게 느껴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도그와 로봇이 함께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입니다.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에 맞춰 손을 잡고 발을 맞추는 두 친구. 이때만큼은 앞으로 다가올 이별을 모른 채 그저 함께하는 순간을 마음껏 즐깁니다.
한때 세상에 하나뿐인 짝꿍이었던 두 사람은 결국 서로의 시절인연이 되지만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이 지난 관계를 잊거나 배신하는 일은 아니라고 <로봇 드림>에서는 말합니다.
어쩌면 시절인연은 한 시절로 끝난 인연이 아니라 한 시절을 함께 했기에 이후의 삶을 또 다시 살아가게 해주는 인연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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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들의 한 줄 코멘트
🍀가든: 그래도 그 시절의 로봇과 도그는 충분히 행복했을거야...ㅠ
🫧에테르: 함께 한 시간은 끝나도그때의 행복은 오래 남아있겠지.. 🥹
➕미현: 이럴 수는 없는 건데!! 이럴 수는 없는 거라고!!
🐢셩: 스쳐 지나간 시절이여도 그때 공유했던 따뜻함은 옅어지지 않을거야 .. 😭 ..
😎케이: ‘September’가 이렇게 슬프고 여운이 남는 노래였었나…? 둘이 다시 만날 거라고 확신했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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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티타임은 어떠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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