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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형의 정체

MORBID-19 · 2026.09.14 09:00 · 원문 보기 ↗

요즘 나오는 음악을 많이 찾아 들어보고 있다. 유튜브의 조회수 수백 회짜리 영상부터 코첼라 헤드라이너까지 골고루 들어보고 있노라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새로운 음악 장르가 나올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현대 음악의 발전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했다. 일렉트릭 기타, 신시사이저, 샘플러, DAW의 등장까지, 새로운 장르는 소리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방법과 함께 등장했다. 일렉트릭 기타는 현의 울림을 전기 신호로 변환했고, 신시사이저는 전기 신호 자체를 조작하여 파형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냈다. 샘플러는 기존의 소리를 재가공하는 기능을 제공했고, DAW는 이 모든 걸 디지털 환경에서 가능하게 했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방법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음악 스타일이 계속 나왔고, 그에 따른 퍼포먼스, 커뮤니티, 패션 스타일, 그리고 서사들이 등장했다. 지미 핸드릭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베리얼, 스크릴렉스. 이들은 모두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소개시켜줬다. 완전히 새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사운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이제 완전히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가 싶다. 내가 아직 덜 찾아봐서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름 음악 평론지의 언더그라운드 특집 기사를 보면서 새로운 음악도 찾아봤지만 요즘에 나오는 언더그라운드 음악도 기존 사운드의 크로스오버 수준에서 그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글리치합, 퓨처베이스, 일렉트로 팝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힙합과 하이퍼팝이 굉장히 유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좀 친다는 이름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대부분 이런 음악을 하는 것 같았다. 요점은 기존의 사운드를 빌려서 아티스트의 특색에 맞게 고쳐 쓴다는 점이다. 이게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나도 에피랑 키키 음악 좋아한다. 내가 묻고 싶은 건 이들의 음악에서 들리는 디스토션이 잔뜩 들어간 베이스 소리가 끝난 뒤에는 어떤 사운드가 등장할까 하는 것이다.

2010년에 나온 스크릴렉스의 앨범은 가히 그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사운드였다. 진짜 우주 최초였다. 물론 그전에도 비슷한 사운드를 만드는 아티스트들도 존재했지만, 스크릴렉스라고 하는 이름으로 덥스텝의 전과 후가 나뉘는 정도의 충격이었다. 과연 지금의 아티스트들은 그들이 차용하는 장르의 전과 후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사실 어디서 누군가 이미 만들었을 확률이 높다. 근데 그 충격과 파급력은 어떨까? 그저 찻잔 속의 폭풍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티스트가 어떤 사운드를 차용하고 사운드가 진화하지 못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충격적인 사운드가 다시 등장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거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 어딘가 찾아보면 충격 그 자체인 음악도 있을 것이다. 근데 그저 충격이기만 한 음악은 구린 음악이다. 충격적으로 좋은 걸 듣고 싶다. 하지만 신시사이저 이후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방법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인류는 신시사이저로 낼 수 있는 소리를 이미 다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소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