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들이 한국에 대해서 유독 더 지랄하는 이유
우리 가족은 내가 2살이었을 때 미국 조지아로 이사 갔다. 그리고 초등학생 나이가 될 때까지 북미에 거주하다가 한국에 돌아왔다. 그 뒤로도 나는 영미권 국가에 가서 몇 년씩 살기도 했다.
그 시절에 나는 내가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생긴 건 동양인이지만 내면은 아니었던 것이다. 전문 용어로 우리는 이걸 트윙키라고 부른다. 겉은 노랗고 안은 하얗기 때문이다.
사춘기 때는 “나는 너네들과 달리 외국에서 오래 살았고, 너네가 못 읽는 영어도 다 읽고, 너네가 가보지 못한 곳들을 다 가봤으니까 같은 취급하지 마”와 같은 생각을 했다. 사실 이런 생각은 꽤나 오래 하고 살았다. 다행히도 어느 날 “나는 한국에 사는 한국인인데,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라고 자각했다. 중2병이 드디어 치유된 날이었다.
이러한 자아 정체성 혼란이 일어났던 이유는 먼저, 나와 세상을 구분 짓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을 더 오래 겪은 이유는 이 수단이 정말 손에 닿을 듯 말 듯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외국을 오가는 것과 외국의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다. 나의 정체성을 강화시켜줄 수 있는 수단을 접하는 것이 너무나도 쉽다. 외국에 단 한 번도 나가지 않아도 외국의 것을 접하고 관련된 정보도 현지인보다 더 잘 알아낼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나도 미국의 것을 더 소비했다. 한국에 살던 나는 미국의 음악, 미국의 영화, 미국의 음식을 소비하며 살았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온전히 포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짓거리를 계속 하다 보면 미국인 취급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최근에 비슷한 현상이 대양 건너의 한국인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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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틱톡을 만든 여성은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이 왜 한국에 대해서 말이 많냐며, 왜 한국에 살지도 않는 놈들이 현지인들보다 더 아는 척하냐고 따지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떡볶이로 국가의 위상이 절정에 달하고 있는 만큼, 자기 자신을 한국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거들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이 ‘한국인’들은 미국에 사는 미국인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검머외라고 하는 표현의 그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의 한국인 정체성을 미국인이라고 하는 정체성보다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미국인’이라고 하는 정체성은 사실 아무 정체성이 없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나의 나라’에 대해 더욱더 목소리를 키워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고등학교에서 야자를 째본 적도 없고, 강남 출퇴근도 해본 적이 없고, 입대라고 하는 실존적 위기를 느껴본 적도 없다. 그들이 아는 한국은 집에서 어머니가 해준 밥, 한글학교, 블랙핑크, 유튜브로 배운 한국의 저출산 문제이다.
그들은 알고리즘으로 전달되는 센세이셔널리즘으로 한국을 배운다. 한국에 살지 않기 때문에 배워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난 그들을 같은 한국인으로 볼 수 없다. 문화적 공통분모는 존재하지만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밝히며 한반도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마음 한편에서는 그들이 왜 한국인이라고 하는 정체성에 집착하는지도 이해한다. 그게 없어지면 자기 삶이 통째로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삶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중2병에 걸렸던 나의 모습이 겹쳐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 틱톡 영상의 여성도 이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줬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