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대가 바뀐 날
초등학교 때 등교하려고 가방을 메고 거실로 나가는데 아빠가 갑자기 불렀다.
“주혁아, 이거 와서 봐봐”
안방의 작은 TV 화면 안에는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냥 영화처럼 느껴졌다. 사실 나는 뉴욕에 가본 적도 없고, 토론토에서 살았기 때문에 크게 느끼는 바는 없었던 것 같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것이 예삿일은 아니라는 것은 지레짐작했지만 어린 나이에 그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나에게 9.11 테러는 미국에게 주어진 기회로 비친다. 9.11 테러가 일어나기 3년 전인 1998년에 이미 PNAC이라고 하는 싱크탱크에서는 당시 대통령인 빌 클린턴에게 사담 후세인의 제거를 주장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들은 후세인이 곧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할 것이니 곧바로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독촉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01년 7월, 미국의 정보기관들에는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가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첩보가 이미 들어온 상태였다고 한다. 이 첩보를 알고서도 수뇌부에서는 별 움직임이 없었다. 그렇게 비행기가 빌딩에 충돌해 수천 명이 사망하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쳐들어갔다. 그리고 2년 뒤에 이라크로 향해 후세인을 찾아 죽이는 작전을 펼쳤다.
사담 후세인은 이미 쿠웨이트와 이란 침공, 화학 무기 사용,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공격 등으로 중동 정세를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이는 친미 중동 국가들과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미국 입장에서는 이라크와 같은 국가가 중동 지역의 에너지를 인질 삼아 미국을 협박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는 사례를 만들어야 했다. 기가 막히게도 명분이 생긴 것이다. 대량 살상 무기 개발과 테러리스트와의 협조. 9.11 테러를 지시한 오사마 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이 한편인 것처럼 프레이밍해서 이라크에 쳐들어갈 이유를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대량 살상 무기는 찾지 못했고, 알카에다와의 연결고리도 매우 약했다. 하지만 그게 어차피 원래 목적도 아니었으니까 알게 뭐람.
오사마 빈 라덴은 9.11 테러를 통해 미국의 침략을 유도해 국력을 소진시키고 무슬림 세계를 극단주의로 물들이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어쩌면 정말 통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미국은 중동에서 지금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고, 무장 단체는 끊이지 않고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미국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도 오사마 빈라덴의 의도를 역이용해서 중동에 본격적으로 무력을 투사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둘 다 어느 정도 목적을 이루게 되었다. 시계열만 조금 다를 뿐이었다.
3년 전에 9.11이 다시 한 번 일어났다. 다만 날짜가 이제 10.7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미처 박살내지 못한 이란을 목표로 미국이 다시 전쟁 기계를 가동시켰다. 역사의 종말일까? 아니면 역사의 재시작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