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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시장이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

MORBID-19 · 2026.08.30 22:05 · 원문 보기 ↗

대통령은 연설할 때 텔레프롬프터를 읽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에 한 국가의 미래가 좌우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텔레프롬프터에 띄워지는 글자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아주 대단한 사람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그 사람’은 피터 틸이고, 미리엄 애덜슨이고, 제러드 쿠슈너이다.

이들은 트럼프가 텔레프롬프터의 글씨를 읊기 전에 이미 무슨 말을 할지 다 아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움직이는, 킹메이커이자 권력의 실세로서 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체스판을 바라보며 그레이트 게임을 즐긴다.

한편, 소시민은 텔레프롬프터에 어떤 단어가 나올지 맞혀야 하는 게임을 한다. 우리는 이걸 멘션 마켓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최근에 한국에서 접근이 막힌 폴리마켓, 그리고 CFTC가 인정하는 미국의 유일한 예측시장인 칼시에서 제공하는 예측시장의 한 종류이다.

어떠한 인물이 특정 시간 안에 시장에서 제시한 단어를 맞히는 것이다. 트럼프가 이번 주 내에 ‘UFO’라는 단어를 말할 것 같으면 지금 당장 칼시에 들어가서 돈을 걸면 된다. 거의 25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와 같은 사람은 텔레프롬프터에 띄워질 내용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억만장자가 되기에는 글렀다. 다만, 트황상이 읊을 문장들을 써주고, 띄워주는 일은 소시민의 몫이다.

한 소시민은 이 기회를 이용해 칼시의 멘션 마켓으로 약 10만 달러를 벌었다가 발각되어 다시 토해냈다. 트럼프의 텔레프롬프터 운영 담당자가 미리 연설 내용을 받아본 뒤에 사실상 내부자 거래를 한 것이다.

나는 이 소시민에게 죄를 묻지 않는다. 그에게는 죄가 없다.

애초에 이러한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내부자 거래를 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되레 이러한 시장이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 묻고 싶다.

트럼프가 가운데손가락을 올리고 뻐큐를 하든, 광화문광장에서 섹스를 외치든 간에, 도대체 이딴 걸 맞히는 게 이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되는 걸까?

예측시장은 이 세상의 어지러운 정보를 시장의 원리로 해소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등장했다. 소위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이라고 하는 걸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겠다고 하지만, 그저 합법적인 도박으로 변질되어버렸다.

분명히 예측시장이 가져다주는 이로움도 있지만, 지금 당장 내게 보이는 것은 또 누군가의 이권에 의해 만들어진 산업이라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