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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민주주의야.

Steve Kim · 2026.09.08 09:01 · 원문 보기 ↗

지금 미국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민간 기업들이 시카고 시내 약 3만 6000개의 노상 주차미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거래하고 있는 것이다. 시카고 시내 노상 주차미터들은 쉽게 말해서 공영주차장이다. 공영주차장이면 정부가 운영하는 것인데, 어째서 민간 기업들이 이 권리를 거래하고 있는 것일까?

그 원인을 알려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경제위기)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에 재정난에 허덕였던 시카고시는 시내 약 3만 6000개의 노상 주차미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앞으로 무려 75년 동안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모건 스탠리가 주도하는 Chicago Parking Meters(이하 CPM)에 넘겼고, 그 대가로 약 11억 5,000만 달러(원화 기준으로 대략 1조 4000억~5000억 정도)를 받았다.

시카고시는 당장의 재정이 급하니 75년간 벌어들일 수 있는 안정적인 수입원을 헐값에 매도한 것인데, 실제로 CPM은 이 계약 체결 후 2024년까지 주차미터에서 약 19억 7000만 달러(2조 7천억)의 매출을 거뒀다. 원금 회수는 물론이거니와 추가적으로 약 8억 달러의 수익을 거둔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운영비용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순이익으로 볼 수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고도 계약이 아직 57년이나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CPM은 이 남은 기간을 Stonepeak이라고 하는 뉴욕의 인프라 회사에 약 25억 3,000만 달러(3조 4천억)에 매각하려고 하고 있다. 즉, CPM은 시카고시로부터 3만 6000개의 노상 주차미터 수익을 1조 4000억에 사들여서, 15년간 2조 7천억의 현금 수익을 얻고도, 나머지 57년에 대한 권리를 3조 4천억에 판매한다는 것이다. 더 웃긴 건 원래 이 노상 주차장을 팔았던 시카고시도 다시 이를 되사기 위해 32억 달러(약 4조 3000억)를 제시했다가 포기했다는 것이다.

지금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시카고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공공 인프라 사업들(인디애나주의 유료도로 운영권 판매, 펜실베이니아 상하수도 시스템 50년 운영권 판매, 뉴저지 Bayonne의 상하수도 시스템 판매, 시카고 스카웨이 99년 운영권 판매 등)에서 빈번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미국과 동일하진 않지만 인프라를 건설함에 있어서 재원이 부족해지자, 민간 기업들에게 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대신 장기간 발생하는 현금흐름과 관리운영권을 민간 금융자본에게 부여한 경우가 있었다. 한국의 경우 어찌 보면 좀 더 심한 게, 한국의 경우 이들이 운영하는 인프라의 수입이 이들이 처음에 정한 최소운영수입보다 낮으면, 정부가 그것을 맞출 수 있도록 지원했다는 점이 뼈아프다. 즉, 한국도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의 경우, 2013년 기준 누적 손실보전액이 8,671억이었고, 천안논산고속도로의 경우도 2013년 기준 누적 손실보전액이 약 3,380억이었다.)

왜 이러한 멍청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걸까?

그 첫 번째 이유는 민간과 정치권의 시간축이 다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시스템 내에서 정치인은 임기가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들의 임기 내에 이들이 원하는 재원을 마련해서 유권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고, 자신이 위대한 정치인으로 칭송받을 수 있을지의 여부다. 이들에게 75년 이후의 일은 중요하지 않다. 75년 후엔 이들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에겐 70년 후보다 지금이 더 중요한 것이다. 반면 민간은 본인들이 소유한 회사를 본인들이 이끄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에겐 지금 당장보다 나중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두 번째 이유는, 국민을 속이기 쉽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통상적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1) 세금을 올리거나 2) 돈을 빌리거나(채권을 발행하거나)밖에 없다. 하지만 세금을 올리면 국민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고, 돈을 빌리자니 이 또한 비용이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이슈가 있다. 반면, 이런 식으로 공공시설을 민간에 판매하는 방식은 비용을 미래에 떠넘기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는 최적의 선택지 중 하나이다.

이들을 누가 뽑았을까. 바로 국민들이다.

James M. Buchanan, Economic Scholar, Dies at 93 - The New York Times

이러한 사례들은 제임스 뷰캐넌(James M Buchanan)의 공공선택론(Public Choice Theory)을 떠올리게 만든다. 제임스 뷰캐넌은 기업가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듯, 정치인도 재선과 정치적 성과, 관료는 권한과 예산을 위해서 유리한 정책을 추구한다고 하였다. 해서, 정부도 인센티브와 정보의 문제 때문에 정부실패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감투에 불과하다. 시카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주차장이 75년 동안 민간 기업에 팔아넘겨졌는지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동의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들의 ‘대리인’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시카고 시민을 대신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게 행동했을 뿐이고, 이에 대한 손실은 미래의 시카고 시민들이 봤다. 그래도 이들은 괜찮다고 한다. 여전히 시카고의 주인은 시장과 시의원들이 아니라 시민들이니까.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국민이 뽑았다고 해서 폭정도, 도둑질도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그 과정이 정당했으니(국민들이 정정당당하게 투표로 뽑아줬으니) 그 결과도 정당화된다고 생각하고 근시안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위험하다. 무자비한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Robert Nozick and the right to self ownership: why welfare is 'a robbery' -  Il Sole 24 ORE

애초에 정부가 존재하고, 정부가 우리를 관리하게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개개인들이 스스로를 현명하게 통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을 대리하는 사람들이 대신해서 개인들을 통제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이에 대해서 되묻는다. “너희들은 애초에 스스로를 현명하게 통제하지 못한다고 믿어서 투표를 통해 대리인을 뽑는다고 하면서, 왜 너희들을 통제할 사람들은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어쩌면, 민주주의니 뭐니 다 떠나서 통치 시스템 자체가 거대한 허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