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함을 배우자
어제 하루 만에 face의 브랜드 웹사이트를 제작했다. 사실 6개월 전만 해도 이 정도 퀄리티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챗지피티의 아스트라 모델은 가히 AGI라고 불러도 될 만큼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불가능도 가능케 해준 것이다.
AI는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지금의 수준도 어린애들 장난처럼 보일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AI의 발전으로 누구나 못하던 걸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약에 지금보다 100배, 1000배 더 발전하게 되었을 때 과연 우리가 보는 인터넷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현재는 그 출처나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는 AI로 만든 영상이 피드를 범람하는 것을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꽤나 보인다. 하지만 AI가 이 세상의 모든 영상 콘텐츠를 분석해 각 인간에게 개별적으로 맞춘 완벽한 대본과 영상미를 보여준다면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 그저 AI가 만들었기 때문에 싫어질까? 애초에 AI로 만든 것을 알아차릴 수는 있을까? 알아도 별 상관없게 되어버릴까? 왜 프로그래밍은 AI로 해도 되고 유튜브 영상은 AI로 만드는 게 별로일까?
우리는 다이소에서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이소의 물건을 장인의 물건과 비교했을 때는 당연히 장인의 것이 더 좋다고 평가한다. 심지어 장인의 물건은 실제 기능이 열등해도 사려고 한다. 가끔은 제 기능을 아예 못할 때도 있다. 왜냐하면 사실 기능이 아니라 그저 그것을 소비하는 행위를 통해 나의 자아를 채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논리를 따라간다고 했을 때 AI를 통한 창작과 소비가 장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마땅히 인정받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아쉽게도 역사는 그렇게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AI의 발전과 함께 장인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치밀하게 구성한 곡 구성과 사운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연출과 불완전함이 더욱 주목받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위 영상의 허드슨 프리먼은 투어 도중에 차에서 내려 주위 차 소리와 바람이 전부 다 들리는 곳에서 녹음을 했지만 사람들은 이에 열광했다. 이 노래는 최후의 기타 히어로 존 메이어가 커버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완벽한 미야오와 그렇지 않은 리센느의 영상을 비교해서 보자. 차분한 스튜디오에서 정해진 질문과 답변을 하는 듯한 쪽과 라면을 먹으며 자연스러운 연출을 하는 쪽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미야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해진 공식대로 만들어지는 그룹 같아 재미가 없다.
우리는 어딘가 모자라 보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들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AI를 거부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이미 AI의 불완전함을 승화한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이 불완전함 또한 AI가 어느새 학습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 모르겠다.
다만 불완전함은 결국 배움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내가 촬영한 샷, 부른 노래, 녹음한 비트 모두 불완전함을 내재하고 있다. 직접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불완전함이 뭔지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AI 때문에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내가 오늘도 이 글을 손수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