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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웃겨서 웃는 걸까

MORBID-19 · 2026.09.09 09:01 · 원문 보기 ↗

혹시 커크피케이션이 뭔지 아는 분들이 있을지 궁금하다. Kirkification. 작년 이맘때쯤, 유타주의 한 대학교에서 총기로 무장할 권리에 대해서 토론하다가 지붕 위의 스나이퍼에게 암살당한 찰리 커크의 얼굴을 이용해 밈을 만드는 행위다.

찰리 커크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아주 잠깐 설명하자면 그는 젊은 미국 보수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대학교 캠퍼스에 가서 리버럴들을 쳐바르는 영상들로 유명세를 떨쳤고 곧 미국에서 제일 큰 보수 논객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미움을 같이 받은 희대의 인물이라고 평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미국 보수 진영에서 밀었던 쟁점들에 대해 단 한 치도 타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태아는 수정된 순간부터 인간이라는 것, 여자는 일하지 않고 집에서 자녀를 양육할 때 제일 행복하다는 것, 성은 남자와 여자 단 두 개만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굉장한 친이스라엘파였다는 것. 그러나 그는 생을 마감하기 전에 이스라엘에 대한 견해를 상당히 바꾸며 네타냐후에 대한 비판과 가자지구의 학살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희화화하는 밈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가 찰리 커크라고 울부짖는 이 AI 노래는 2025년을 뒤흔들었다. 여전히 찰리 커크의 ‘팬’들은 이 영상을 방문하고 있다.

“이제 거의 1 AK야 (After Kirk)”
“의도치 않게 웃긴 것 중에 아마 이게 최고 아닐까”
“찰리 커크 일대기 영화 엔딩 크레딧에 이게 나온다고 상상해봐”
“인도에 있는 한 청년은 이 노래를 들으며 흐느끼고 있어”
“이딴 것 때문에 내가 RAM을 못 사고 있어”

실소가 터져 나왔다. 미안하지만 난 이런 패륜적인 밈에 웃는 사람이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제 그냥 웃기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는 어느샌가 찰리 커크 밈들로 도배되어 버렸다. 그의 죽음이 나한테는 웃음거리로 전락해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찰리 커크를 그의 생전에 싫어했나? 아니다. 과거에 사실 나는 찰리 커크의 사상과 더 근접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 살지는 않지만 미국 수정 헌법 제2조는 시민의 권리를 지키는 데 필수적인 것이라고 여겼고, 태아는 수정되는 순간 인간임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성도 단 두 개만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은 머리를 파란색으로 물들인 그분들과 같은 견해는 아니지만 위의 애국보수 스탠스도 아니다.

찰리 커크의 죽음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비록 지금은 그 견해가 꽤나 달라도 내가 자주 보고 듣던 그 인물의 목에서 피가 쏟아지는 모습을 트위터에서 바로 목격할 수 있었던 것도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그래서 내가 찰리 커크와 실제 친분이 있었더라면 커크 밈들을 보면서 웃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컴퓨터 화면 안에 있는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지는 것이 아닐까?

근데 여기서 한 번 더 들어가서, 내가 보고 웃었던 커크 밈들이 과연 정말 자연스럽게 내 피드에 오른 것일까?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이 자기 입맛대로 알고리즘을 쥐락펴락하는 건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커크 밈들도 혹시 그의 죽음을 조롱거리로 만들기 위한 누군가의 노력일까?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모두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메틱 워페어(memetic warfare)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래서 커크 밈을 보면서 웃은 내가 다른 이유로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나의 웃음도 그들이 무기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