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테크잇슈를 운영한 지 약 2년 6개월이 됐습니다.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는데요. 요즘 들어 느끼는 새로운 배움이 하나 있습니다. AI의 발전으로 생산 비용이 0으로 수렴하는 시대에 과연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에 대해서입니다.
2. 제가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 웃기지만, 이제 단순한 기사 큐레이션 측면에서 뉴스레터 사업의 해자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누구든 AI와 조금만 친해지면, 전 세계의 수많은 뉴스 중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내용만 쏙쏙 모아 잘 정리된 형태로 받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그럼에도 테크잇슈의 구독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픈율도 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요. 물론 단순 큐레이션 외에 칼럼을 함께 제공한다는 차별점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구독자가 늘고 있다는 사실에 답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역시 제 입으로 말하기 웃기지만) 제가 작성하는 칼럼이 매번 소름 끼치도록 잘 쓴 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웬만한 글을 AI가 더 잘 쓰고, 몇 번의 대화로 꽤 쏠쏠한 통찰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4. 그렇다면 왜 테크잇슈의 구독자들이 계속 느는 걸까요? 이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독자분들이 그저 정보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파편화된 정보들 속에서, 테크잇슈라는 매체 그리고 이재훈이라는 사람의 시선과 해석을 신뢰하기 때문에 기꺼이 뉴스레터를 보는 시간을 내어주시는 것이죠. (맞죠..?😅)
5. 과거에는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강력한 해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누구나 쉽게 코딩을 하고, 디자인을 하고, 그럴싸한 글을 쓸 수 있는 '공급 폭발'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경제학의 기본 원리에 빗대어 본다면, 공급이 무한대로 폭발하는 순간 그 결과물의 시장 가격은 자연스럽게 0을 향해 갑니다. 즉, '만드는 행위' 자체가 가졌던 희소성이 사라지는 것이죠.
6. 이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한 가지 질문에 봉착합니다. "AI도 다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굳이 당신(혹은 당신의 기업, 서비스)이어야 하는가?"
7. 앞으로의 시대에 살아남고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찾은, 적어도 당분간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정답은 '신뢰'입니다.
8. 콘텐츠와 도구의 공급이 아무리 폭발적으로 늘어나도, 그것을 소비할 인간의 시간은 하루 24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설령 자본이 무한히 풍부해진다 한들 시간을 돈으로 늘릴 수는 없죠. 결국 사람들은 한정된 시간 안에서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찾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것에 자신의 가장 신뢰하는 대상에게 시간과 지갑을 열게 됩니다.
9. 그런데 말이 쉽지, 신뢰라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수치화하기도 어렵죠. 어떤 대상을 신뢰할 때, 사람들은 머릿속 복잡한 알고리즘을 거치기보다 직관과 감에 의존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왜 그것을 믿고 선택했는지조차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10.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신뢰를 쌓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결국 '꾸준함'입니다. 은행에서 대출 심사를 할 때 꾸준히 월급이 찍히는 직장인이 소득이 들쭉날쭉한 프리랜서보다 유리하듯 꾸준함은 신뢰의 가장 기본요소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얼핏 신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뾰족함(자기만의 색깔)'입니다.
11. 국민 예능으로 불리던 과거 <1박 2일>의 시청률은 30%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당시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나영석 PD조차 요즘은 예능 시청률이 3%만 넘어도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지상파 채널 3개가 전부였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케이블은 물론 OTT와 유튜브까지 콘텐츠 공급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죠. 즉, 과거에는 선택지가 적어 적당한 무난함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면, 대체재가 넘쳐나는 지금은 무수한 경쟁자들 속에서 선택받아야 하기에 누군가를 '신뢰'하기까지의 기준이 엄격해진 것이죠.
12. 무난하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이야기는 적을 만들진 않지만, 강력한 내 편을 만들지도 못합니다. 반면 누군가의 시선이 극도로 뾰족해서 내 취향이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순간, 우리는 강렬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이 사람은 세상을 나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구나"라는 깨달음은 곧 굳건한 신뢰로 이어지죠. 이는 콘텐츠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는 특정 브랜드의 '찐팬'이나 '슈퍼팬'이 탄생하는 심리도 결국 이 뾰족함에서 출발합니다.
13. 특히 AI 시대에 이 뾰족함은 개인의 생존을 결정지을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AI는 본질적으로 '평균'에 수렴하는 답변을 내놓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공격받지 않아야 하고, 언제나 안전하고 무해해야 하니까요. AI가 모두를 위한 둥글둥글하고 완벽한 평균의 결과물을 쏟아낼 때, 인간은 기계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편향적이고 뾰족한 시선을 던져야 합니다.
14. 어쩌면 제가 3일 동안 적었던 원고를 과감히 포기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뉴스레터를 직접 운영하며 부딪혀본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을 거시적인 경제의 관점으로 이어 붙이는 작업. 이것만큼은 아무리 똑똑한 AI라도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영역일 테니까요. (자만이려나요?👀)
15. 여기까지 생각의 꼬리를 물고 나니,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깊게 의식하지 않으셨겠지만, 수많은 메일 중에서 굳이 테크잇슈를 클릭해 열어보는 그 짧은 찰나에 신뢰라는 것이 작용했을지도 모르니까요. (무려 쇼츠와 릴스를 이겨내고!)
16. 거창하게 시작했던 통찰도, 결국 늘 그렇듯 스스로를 향한 다짐으로 끝을 맺게 되네요. 여러분이 기꺼이 내어주시는 그 귀한 시간과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도 평균에 머무르지 않고 저만의 꾸준하고 뾰족한 시선을 담아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