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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불안 저래도 불안, 그래도 아이는 자란다_육아와 자아 사이_노현정

2026.06.23 12:00 · 원문 보기 ↗
이래도 불안 저래도 불안, 그래도 아이는 자란다
육아와 자아 사이_노현정

점심 메뉴 하나 고를 때에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이에게, 사람을 키운다는 건 실로 너무나 큰 결정의 연속이다. 산부인과 병원이나 출산 방식같이 정말 큰 결정부터, 오늘 어린이집 하원 후에는 또 어디 가서 놀지 정하는 일까지. 우리 삶이 원래 그렇듯, 매일 선택에 선택을 거듭하며 육아하고 있다. 나 혼자에 관한 결정도 여전히 너무 어려운데, 새하얀 도화지 같은 아기에게 매 순간 내 선택에 따라 빨강, 파랑 색칠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참 부담스럽다.

 

유자가 태어나기 전, 육아서를 뒤적이며 막연하게나마 나름의 기준을 세워두었다. 자연에서 최대한 뛰놀게 하겠다, 건전지 장난감은 가급적 주지 않겠다, 너무 깔끔 부리지 않고 금지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키우겠다, 스스로 사고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조금 심심하게 키우겠다, 등등. 육아 철학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거창하지만, 그래도 한 인간, 새로운 팀원을 잘 키워내고 싶은 마음으로 고민하며 정한 방향이었다.

 

그러나 역시 이론과 실전은 달랐다. 더우면 더운 대로 땀 흘리고 찝찝한 기분도 느껴보도록 놔두다가도, 땀띠처럼 등에 울긋불긋 뭔가가 올라오면 내가 잘못했나 싶어진다. 건전지 장난감은 수동적인 자극 같아서 피하고 싶었는데,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딱 5분만 혼자 놀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결국 꺼내게 된다. ‘안 돼. 하지 마.’ 최대한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두루마리 휴지를 끝없이 뽑아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참기가 쉽지 않다. ‘혼자 노는 시간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자란다더라’ 믿고 있다가도, ‘상호작용을 충분히 안 해주면 언어 발달이나 사회성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이 밀려온다. 자연물이 최고의 친구라고 생각해서 장난감을 많이 들여놓지 않았는데, 자극이 부족해 심심해 보이는 것 같아서 결국 장난감 도서관으로 향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꽤 단단하다고 믿었던 나의 가치들이 꼭 태풍을 만난 여름 나무처럼 이리저리 흔들린다. 흔히들 말하듯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른 집 엄마와 아기 이야기를 접할 때 더 크게 흔들리는 것 같다. 특히 소셜미디어를 보다 보면 우리 집은 아주 큰일이 났다. 지금 당장 이 교구를 사지 않으면 우리 아기만 발달이 지연될 것 같고, 이 옷을 사지 않으면 이번 여름 유행에 뒤처질 것 같다. 모두를 구원해 줄 이 육아 아이템은 반드시 있어야 할 것만 같고, 다들 아기 발달을 위해 뭔가 열심히 하는데 나만 꼭 게으른 엄마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공동구매 일정을 찾아보고, 알고리즘은 ‘절대로’ ‘반드시’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말라는 게시물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나는 점점 양육 불안에 휩싸이고, 결국 챗지피티를 열어 상담을 시작한다. 챗지피티는 내 생각이 맞다고 말해주지만, 꼭 나를 기분 좋게 하려고 하는 소리 같아서 안도감과 함께 묘한 찝찝함이 남는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나 자신을 다독인다.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내 가치를 따르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는데, 다음 날이면 내가 괜한 아집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닐지 다시 의심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떠올리려고 애쓰는 문구가 있다. 아이는 스스로 자랄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 아이의 발달과 성장을 내가 이끌어야 한다는 착각과 부담감을 내려놓고, 다른 집 아기와 비교하지 말고, 아기가 타고난 성격과 기질을 바탕으로 자기다움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그저 지켜보며 응원하면 될 일인데 말이다. 결국 불필요한 걱정과 불안은 내 안의 비교와 욕심이 빚어낸 것이었다. 새하얀 도화지의 주인도, 그 위에 색을 칠해갈 크레용의 주인도 내가 아니라 아기인데 말이다.

 

그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충분히 전해주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거면 된다.

육아와 자아 사이
일 중심의 삶에 임신-출산-육아의 세계가 찾아오면서, 그 사이 어디쯤에서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날들을 이야기합니다.

* 글쓴이 - 노현정 (noh.hyounjung@gmail.com)
교육 x 국제개발협력 언저리에서 일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다정한 우리를 꿈꾸며 글을 씁니다. brunch.co.kr/@no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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