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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외로운 사람이군요_아일랜드 일상다반사_도윤

2026.06.24 09:20 · 원문 보기 ↗
당신도 외로운 사람이군요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도윤
출처: shutterstock

우크라이나에서 온 소년 이반

 

“전 풀과 나무가 펼쳐진 아일랜드의 풀숲이 좋아요. 이렇게 피어 있는 노란색 꽃, 또 하얀색 꽃도 정말 아름다워요.” 좁은 길을 걸으며 한 손으로 꽃잎을 조심스레 쓸어내며 이반이 말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10살이 된 소년이 유튜브나 게임기가 아닌 꽃이나 나무를 보고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나에게는 참 신기했다.

 

“이반, 네가 살던 곳에도 이렇게 꽃과 나무가 많았니?”

 

“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가기 전에 아빠와 함께 염소를 돌보고, 학교에 다녀와서는 친구들이랑 풀밭에서 축구도 하고, 새로 핀 꽃도 찾아보고 그러다 누워서 애들이랑 이야기도 나누고 했어요. 참 좋았었어요.”

 

이제 막 1년 정도 배운 영어로 자신의 생각을 천천히 말하는 이반의 말을 나는 최대한 집중해서 들었다. 어떨 땐 문장을, 어떨 땐 그냥 몇 개의 단어만을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반이 하는 말을 거의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었다.

 

커뮤니케이션이란 단순히 ‘언어’의 교환뿐만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감정을 나누는 과정이라는 것을 지난 12년간 이방인으로서 살면서 경험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육 보조원(Special Needs Assistant)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또 특수학급에서 교사의 업무를 돕고 아이들의 생활을 돕는 일이 힘들지만 보람된다. 대개는 자폐 스펙트럼의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도움(정리정돈, 밥 먹기, 화장실 가기)을 주는 일이었는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영어에 서툴고 아일랜드 문화를 낯설어하는 하는 아이들을 돕는 일이 늘어났다.

 

우크라이나어 또는 러시아어를 쓰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또한 전쟁을 경험하면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단계에 맞는 아동발달이나 학습에 공백이 있었다는 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족과 헤어지고, 익숙한 삶의 터전을 떠나 낯선 곳에서 적응해야 하는 점은 심리적이로 아이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았다. 이반의 친구 맥스는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수업 시간에 늘 살짝 옆으로 돌아 앉아 있었는데, 전해들은 바로는 살고 있던 아파트에 폭격이 있었고 그 때 청각에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마다 사연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또 아이들인지라, 웃으며 등교를 하고 점심시간에는 운동장에서 머리카락이 땀에 다 젖을 정도로 축구를 하면서 수업 시간이 시작되는 종소리를 들으며 아쉬워하는 그저 평범한 초등학생일 뿐이었다.

출처: cbsnews

길을 다시 걷다.

 

좁은 길을 벗어나 차가 한 대 정도 다닐 수 있는 길가로 나왔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학교에서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2주간의 캠프가 시작되었고, 그 날은 반나절 정도 하이킹을 하고 있던 때였다.

 

천천히 길을 걷다가 또 차가 오면 잠시 멈춰 서기를 반복하다가 우리는 어느새 갈대가 무성한 너른 밭에 이르렀다. 아이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길가에 듬성듬성 피어있는 갈대를 손으로 만지며 나에게 매우 인상적인 말을 했다.

 

“얘는 길가에 피어있네요. 저기 갈대밭 무리에서 떨어져서요...엄마는 요즘 많이 외로워해요. 집에 돌아가 본지 2년이 넘었다고 하면서요..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외로워요..”

 

고개를 떨구고 말하는 아이의 마음에 왠지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나는 아이의 옆에서 잠시 동안 말없이 걷다가 이내 괜히 목소리를 높여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이반, 나도 엄마 아빠를 만난 지 1년이 넘었어. 엄마 아빠가 보고 싶지만, 나에게는 아일랜드가 이제 집이니까 가족과 함께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

 

의기소침한 이반을 위로하기 위해 나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면서 힘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잠시 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반이 나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레지나도 외로운 사람이군요. 엄마도 나도 그리고 레지나도 우리는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에요.”

 

그 아이가 연민에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통해 순간 눈물이 왈칵 흘러나왔다. 그리고 언제나 안간힘을 써서 모른 척하려고 했던 ‘타향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 ‘나’라는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맞아. 나도 참 외롭게 살고 있었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한국인들 사이에서 동떨어져서 그렇게.’

 

먼지가 가득한 흙길을 이반과 함께 걸으며 나는 예상치도 않은 시간에 또 예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위로를 받고 또 상처가 치유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출처: QuotesGram

그날 이후로 소년 이반은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을 열어 제일 먼저 나에게 왔다. 어느 날은 싱싱한 딸기를 권하고 또 어느 날은 아직도 따뜻한 치킨너겟을 권했다. 학교 규정상 아이들은 도시락을 나눠 먹으면 안 되었는데, 여름 캠프에서 그런 규정은 느슨해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한 개 정도 집으면서 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 날 이후로 이반이 나를 돌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앞날을 축복하고 싶다. 낯선 곳에서 엄마와 어린 동생과 함께 아일랜드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또 이반이 내게 해 주었던 위로처럼 이반에게도 살면서 힘든 순간에 누군가에게 그리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따뜻한 위로를 받고 힘을 내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며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도윤

사람을 돕기 위해 공부하고 또 일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일랜드에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고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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