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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바다, 사랑이라는 배_아일랜드 일상다반사_도윤

2026.07.22 07:00 · 원문 보기 ↗
인생이라는 바다, 사랑이라는 배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도윤
출처: the Noun Project

나는 물소리를 좋아한다. 계곡에서 물이 ‘쪼로록’ 흘러내리는 소리가 좋고, 높은 곳에서 아래로 ‘쏴아~’ 쏟아지는 물소리도 좋아한다.

 나는 또 특유의 물 냄새를 좋아하는데, 특히 바닷가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좋다. 예전에 대학을 가기 위해 고향을 떠난 뒤, 몇 달 만에 부모님을 뵙기 위해 경부선 기차를 타고 역에 도착한 뒤, 짜고 비릿한 공기를 들이쉬었을 때 느꼈던 안도감은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바닷가 옆 타운(town)에서 살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에서 결혼을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때, 나는 바닷가의 작은 타운(town)에 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 늘 고민을 하는 편인데, ‘타운(town)'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마을이라고 하기엔 의미가 지리적으로 너무 작은 느낌이고, 또 작은 도시라고 하기엔 한국과 비교해서 너무나 규모가 작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이 어느 곳이든 다니고, 빨간 버스, 파란 버스, 녹색 버스가 어디든 나를 데려다주는 곳에서 살던 나는 한 시간에 한 대(그것도 만차가 되면 다음 차를 기다려야 하는) 시내로 가는 버스가 다니는 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운전면허 따기에 적극적이지 않던 내가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는 아일랜드식 운전에 적극적일 리 만무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걸어서 동네 어디든 다니면 되고, 오후 4시면 퇴근하는 남편의 도움으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기동성이 없었지만 타운 중심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슬세권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출처: chatgpt image

바다와 우리

 

아이를 낳고는 유모차를 끌고 마트도 가고, 놀이터도 가고, 성당도 다녔다. 또 10분을 걸어 아이와 함께 펼쳐진 바닷가 백사장에 가서 뒤뚱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기도 하고, 유모차에 아이를 앉혀놓고 간식을 먹이며 파도 구경, 갈매기 구경도 했다.

 

무엇보다 펼쳐진 바다를 볼 수 있는 집에 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눈이 부시게 밝은 보름달에서 쏟아져 내리는 달빛이 비추는 바닷물의 일렁임을 보는 것이었다. 의자 2개를 놓을 수 있는 베란다에 아이와 함께 앉아 달빛이 비추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예전의 두보 시인이 달빛이 비치면 기어코 배를 띄워 술을 마신 이유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인가 서도 밴드의 ‘뱃노래’를 처음 듣게 된 날이 있었다. 아마도 내 마음이 왠지 서글픈 날이었던 것 같다.

 

달은 밝고 명랑한데 고향 생각 절로 난다 절로 난다

푸른 바다 배 띄우고 걱정일랑 바다에 떠나보내자

 

그 노래를 듣고 있자니 평소 같으면 버선발로 뛰어나갔을 텐데 그 날은 창밖에 보름달 빛이 비추는데도 베란다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고향 생각에 마음이 아프고 왠지 내 삶이 처량하게 느껴지기 시작해서 밖으로 나가면 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출처: magnific

부서지는 파도

 

아일랜드에 처음 방문했을 때, 보다 넓고 깊은 대서양을 보여준다며 남편은 나를 절벽 꼭대기 같은 곳에 데려가 주었다. 그 곳에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엄청난 굉음의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바닷가 절벽을 들이치는 파도의 소리는 가슴이 철렁일 만큼 정말이지 웅장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이 더 끌린 것은 철썩인 뒤 다시 바다로 밀려나가며 해변에 깔린 자갈들 사이로 비켜갈 때의 ‘사르르륵’ 하는 소리였다.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바다의 소리였다.

 

남편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한껏 꾸몄던 머리카락은 온통 흐트러지고 소금기를 가득 머금게 되었지만, 자동차 거울에 비춰졌던 빨갛게 상기된 나의 얼굴도 그의 얼굴도 왠지 예뻐 보였다.

 

조심스럽게 굽이진 길을 천천히 내려오면서 남편은 음악을 틀었다. 물기를 한껏 머금은 무거운 회색 구름 사이를 지나는 기분마저 들던 안개가 낀 좁은 길이었다.

 

This is the day the fisherman likes, and so do I

When the rain puts a shine on the chestnut spikes.

Hear the curlews cry.                          <So do I-Christy Moore>


화창한 날에는 바다에 햇빛이 반사되어서 물고기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흐린 날의 바다를 더 좋아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하늘을 보았다. 햇볕이 짱짱한 봄날에 예정된 소풍을 불평하며 약간 스산하고 흐린 날씨가 더 좋다는 나의 말에 독일에서 공부하고 오신 성당의 신부님이 “너는 유럽에서 사는 게 맞겠다.”라고 하신 말씀이 왠지 예언처럼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출처: chatgpt image

좁은 의자에 셋이 나란히 앉아 크리스티 무어의 콘서트를 보았다.


그 날 이후 크리스티 무어의 노래를 나는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크리스티 무어가 올 해로 81세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12년 전 절벽 끝에서 그의 노래를 들었던 이후로 나는 언제나 그의 공연을 직접 보고 싶었다. 잔인한 생각 같지만 정말로 그가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기 전에 그의 공연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자리에서 예약을 했다. 다행히 보호자가 있으면 아이도 함께 공연을 볼 수 있어 말하자면 가족의 ‘첫 번째 공연관람’이 예정되어 기대감에 설레기도 했다.

 

좁은 의자에 우리 셋은 나란히 앉아 2시간 가까이 되는 공연을 감상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또 노래하는 모습이 그저 대단해보였다. 모든 노래들이 좋았지만, 그가 앵콜곡으로 부른 이 노래가 내 마음에 와닿았던 이유는 그간 내가 했던 고민들에 대한 위로로 들렸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바다 위에서 아일랜드 남자를 만나고 두려움도 겁도 없이 새로운 항로를 선택했던 12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더 이상 한국인 같지 않고, 아일랜드에서는 늘 이방인이었던 나의 시간들이 힘들고 지치기만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I am a sailor, you're my first mate

We signed on together, we coupled our fate

Hauled up our anchor, determined not to fail

For the heart's treasure, together we set sail

With no maps to guide us we steered our own course

Rode out the storms when the winds were gale force

Sat out the doldrums in patience and hope

Working together we learned how to cope


Life is an ocean and love is a boat

In troubled waters that keeps us afloat

When we started the voyage, there was just me and you

Now gathered 'round us, we have our own crew

Together we're in this relationship


We've built it with care to last the whole trip

Our true destination's not marked on any charts

We're navigating to the shores of the heart


                                                <The Voyage-Christy Moore>


그러나 그의 노래는 가족을 만들어 살아가고 삶의 어려움을 사랑으로 이겨내며 계속해서 항해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삶의 고비들, 인간적인 고비들과 어려움들이 어쩌면 내 인생을 또 움직이게 하고 사랑을 깨닫게 해주는 것들이라는 점을 알게 해 준 것 같다.

 

사는 게 참 쉽지 않다. 그래도 또 살아가야지. 닻을 내리고 바다 한 가운데에서 표류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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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일상다반사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며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도윤

사람을 돕기 위해 공부하고 또 일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일랜드에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고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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