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도 2학년이 되어서야 이도 하나 둘 빠지기 시작했다. 역시 몸의 변화와 함께 아이의 배움의 세계도 달라졌다. 집에서 글자가 많은 책에 머리를 박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장면을 몇 번 목격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 해도 중요한 신호였다. 뭔가 따라 쓰기도 했다. 그림만 주구장창 그리던 아이가 그림에 글자도 써넣으려고 내게 물어왔다. 그럴 때마다 기쁘기도 했지만 담임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다. 선생님도 이 아이의 변화를 같이 느끼고 있을까, 답답하지 않을까, 수고스러울까 봐 걱정이 서렸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내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면서 한글도 배우고 있다고 걱정 말라 했다.
생각만 해도 ‘하아’ 하고 뜨거운 한숨이 나온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이 여름 날, 우리 집에 경사스러운 소식이 하나 생겼다. 바로 둘째 아이가 2학년 2학기를 앞두고 비로소 한글에 눈을 뜨고 무언가를 줄줄 읽고 있다는 것이다. 드디어 문자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지나가는 간판에 눈과 고개가 돌아가고 보이는 글자를 읽어대느라 연신 중얼중얼 거린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준 담임 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밀려왔다. 시골 작은 혁신학교라 여러모로 배려가 있었을 거라 여긴다. 둘째 아이 말고도 한두 명 더 한글을 깨치고 있는 아이가 있다고 들었다. 참고로 아이 반 학생 수는 총 7명이다. 올해 담임 선생님 몸 속에 만들어졌을 사리도 비슷한 숫자이지 않을까 싶다.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열심히 하는 순우가 참 대견하고 예뻐요.” 한글 선생님께 온 것이다. 뜻밖의 말이라 고마운 마음과 겸연쩍은 마음이 들었다. 시골에 이사와서 아이에게 자기 속도대로 적절히 끌어주고 충분히 너그럽게 보아주는 선생님들 곁에 있다는 것이 참 고맙고 의지가 된다. 언젠가 더 빨리, 더 많이 배우는 것이 중요한 시기가 찾아올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어린 시절을 충분히 누리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어른들 품속에서 스스로 깨우쳐 나가는 힘을 잘 비축해 두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부터는 도움 선생님과 배우는 건 한글이 아니라 수학이란다. 한 아이의 시간을 믿는 일, 아이들은 기다려주는 시간 속에서 자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