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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슝의 바람_[산을오르는아이들]_윤경

2026.07.13 07:30 · 원문 보기 ↗
옥수슝의 바람

산을 오르는 아이들 / 윤경

ⓒ 2026.윤경 All rights reserved.

옥수수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나는 옥수수를 그닥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남편과 아이들은 옥수수를 몹시 좋아한다. 여름에 삼시 세끼를 옥수수만 먹어도 좋다고 한다. 혹시 옥수수 하나에 맺혀 있는 알갱이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남편은 바로 맞추고 말았다. 보통 700 ~ 800여 개라고 한다. 그렇다면 옥수수 알갱이가 어떻게 수정되는지 아는가라고 묻는다면 암만 옥수수 먹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이건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선 옥수수 작물은 같은 줄기에 암꽃과 수꽃이 각각 따로 피는 자웅동주 식물이다. 옥수수의 제일 꼭대기에 수꽃이 생기고 개의 꼬리를 닮아 ‘개꼬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암꽃은 잎겨드랑이에서 자라는 이삭에 달려있다. 암꽃의 수염이 길게 뻗어 나와 수꽃의 꽃가루를 받아 수정이 되면 옥수수 알이 만들어진다. 그럼 이때, 수꽃은 꽃가루를 어떻게 암꽃에게 전달할까?

 

아, 이 내용들은 오늘 수업 준비를 위해서 찾아본 것이다. 실은 나는 해남, 미세마을에 이사를 온 뒤 2주에 한 번, 2시간 동안 지적장애가 있는 중학생 아이들 6명과 만나고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농부 언니들이 <미세자연마을학교>라는 이름으로 농가체험 학습을 열고 있어서 나도 얼떨결에 같이 돕게 되었다. 지적장애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이 처음이라 긴장되고 부담감이 들었지만 웬걸 막상 아이들을 만나자 내가 그동안 지적장애라는 단어가 주는 편견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구나 싶었다. 일반적으로 보는 아이들과 조금 다를 수는 있어도 아이들은 다 같은 아이들이었다.

 

중학교 1학년에서 3학년인 여자아이 둘과 네 명의 남자아이들의 지적장애 수준은 제각각 달랐다. 그러니까 각자가 안고 있는 어려움의 종류는 조금씩 달랐다. 그럼에도 이들은 일반 중학교에 다니는 특수반 학생들이라 일상생활의 큰 불편함은 없는 친구들이었다. 말이나 학습이 조금 더디고 느릴 뿐이지 서로 대화를 나눌 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학생이지만 천진난만한 초등학교 3~4학년 친구들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단 한 명만 빼고.

 

미세마을에 찾아온 아이들과의 수업은 전반적으로 밭이나 자연에서 몸을 쓰며 교감을 하고 수확해온 작물로 먹을 것을 직접 만들어서 먹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내가 함께 합류하게 되면서 그림책과 예술 활동을 조금 가미하게 되었다. 거창한 활동은 아니라 그림책으로 마음을 열고, 작물을 그려보거나, 자연물로 놀아보거나, 관련 노래를 부르거나, 마음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수업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지, 매일 아이들이 주로 만나게 되는 학교 사람들, 가족 외의 지역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교류의 장이기도 하다. 

ⓒ 2026.윤경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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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이 오고 이웃 농부 언니는 옥수수를 주제로 잡았다. 아이들과 함께 옥수수를 직접 따와서 쪄 먹는 일정이다. 나는 옥수수와 관련된 그림책인 하라시마 마미의 <옥수수 옷벗기>를 읽었다. 옥수수가 껍질을 힘겹게 다 벗으면서 “옷벗기 대성공”이라는 대사를 던지고 유유히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그림책이다. 이후, 우리는 일상에서 크고 작게 성공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옥수수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잎사귀와 줄기, 수염에 수많은 다양한 선들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정작 옥수수 알이 어떻게 맺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옥수수를 딸 때 나는 소리와 느낌도 알지 못했다. 이웃 농부 언니의 설명을 들으면서 옥수수 식물에 암꽃과 수꽃이 함께 있다는 점을 아이들과 함께 배우게 되었다. 이들이 수정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그 대답이 참 기막히게 재밌다.

 

옥수수에게 필요한 건 바로 바람이다! 새삼스레 놀랍지 않은가? 우리들을 환기시켜주는 것. 생명이 움트기 위해서 바람은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농부들은 옥수수를 심을 때 재배 중인 옥수수의 종자를 채종하기 위해서 다른 품종의 옥수수와 격리하여 심기도 한단다. 바람에 의해 종자가 서로 교잡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초로 구입한 종자의 특성을 완벽히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사실에 너무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현듯 아이들에게 미세마을은 어떤 곳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나 학교는 평가하고 우열을 나누는 닫힌 공간이라면, 이곳은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지만 서로를 구분하는 경계가 없는 곳이다. 자연 속에서는 우리 모두 하나의 생명체, 인간일 뿐이다. 함께 나누어 먹고 웃고 즐거운 것이 일상인 공간이다. 여기 찾아온 아이들은 지적장애, 특수반 아이들이라는 이름을 잠시 떼어 놓고, 자유로운 공기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느끼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앞에서는 한없이 자신을 더 드러내도 괜찮다고 안심했으면 좋겠다. 이 아이들이 바람처럼 자유롭게 사회 어디든 드나드는 존재가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작물들은 서로 교잡이 되면 품종의 형질이 불안정해지고 생산량이 떨어지고 품질도 균일하지 않게 되어서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우리 인간들은 어떠한가. 서로 각자가 다양한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서로 한데 어울려 뒤섞여도 크게 탈이 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풍성해진다. 어쩌면 서로 더 완전해질지도 모른다. 나는 이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는 인식에 확장이 일어남을 느꼈다. 이 아이들의 미래와 앞날을 걱정하기 전에 한 존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다 밀도 높은 시간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마저 들었다.   
ⓒ 2026.윤경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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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동안 총 여섯 번의 만남을 가졌다. 여섯 명의 아이들 중에 유독 마음에 제일 걸리는 친구가 있었다. 말도 잘 안되고 행동도 느리고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수업 참여가 늘 안되던 아이다. 털 달린 동물을 좋아해서 고양이, 개만 따라다니던 녀석이 오늘은 웬일로 의자에 앉았다. 우리와 같이 옥수수 껍질을 힘껏 뜯고 끝까지 벗겼다. 옥수수 털을 잡고 ‘머리카락’이라는 말을 하면서 간지러운지 마구 웃었다. 옥수수 털을 그렸고, 내 옷에도 그려버리고 개구진 표정을 지었다. 김이 폴폴 나는 옥수수를 하나를 잡고 입안 가득 옥수수 대까지 아구아구 씹어 먹었다. 우유도 꿀떡 꿀떡 마셨다. 방귀도 뀌고 트럼도 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여섯 번 만의 이룬 작은 성공이다!

 


글쓴이 / 윤경
논과 밭, 산과 바다를 어슬렁거리며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성장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마음을 어루만지며 살고 싶습니다. 

yoon.vertclair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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