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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조

새로운 문명의 운영체제는 누가 만들 것인가?

Billy Jo · 2026.07.16 16:37 · 원문 보기 ↗

이병한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계속 문명(civilization)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국가가 아니라, 문명 자체에 대해서.

그중에서도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남았다.

이작가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말하는 ‘4차 산업혁명(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라는 개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의 주장은 우리가 지금 산업혁명 4.0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혁명 1.0(Digital Revolution 1.0) 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인터넷은 본게임이 아니었다.

인터넷은 전초전(pre-game)이었다.

본게임은 AI다.

인터넷은 전 세계를 연결하고 디지털 시대의 철도를 깔았다.

AI는 그 데이터 철도 위를 달릴 새로운 스팀 엔진이 되고 있다.


AI는 우리가 일하고, 배우고, 창조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만약 AI가 21세기 가장 강력한 권력의 원천이 된다면, 블록체인(즉 크립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AI는 권력을 만들어내고, 그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킨다.

반면 블록체인은 개인을 그 중앙집중화된 권력으로부터 보호한다.

블록체인은 정부나 거대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도 개인이 디지털 자산을 소유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18세기 말과 19세기 초가 떠오른다.

그 당시에는 철도, 증기기관, 철강, 그리고 이후의 석유가 문명을 바꾸었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이 철도다.

GPU는 공장이다.

AI는 증기기관이다.

그리고 크립토는 디지털 세계의 금융 시스템이자 재산권 시스템이 될 가능성이 있다.

진짜 질문은 AI가 사회를 바꿀 것인가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어떤 문명이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가?


중국은 인민과 당이 하나의 장기적인 목표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까지 세계 1등이 되는 것.

반면 미국은 다르게 보인다.

수많은 목표는 있지만, 국가 차원의 명확한 방향은 보이지 않는다.

한때 미국은 젊은 도전자였다.

유럽에 비해 잃을 것이 적었고, 새로운 땅에서 귀족 및 농업혁명으로 권력에 자리에 오른이들이 없이 새롭게 시작한 덕분에 산업혁명의 가장 큰 승자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은 기존 질서(established power)를 대표하는 건국 250살 (1776년생)국가가 되었다.

반면 중국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현대 국가로서는 아직 젊은 70대(1949년생)이다.

여러 면에서 지금의 중국은 100년 전 미국을 떠올리게 한다.

야심차고, 배고프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마치 미국이 70대였던 1840-50년대를 방불케하는.

중국은 공산당이 통치하는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분야에서 중국은 미국의 정치 시스템보다 공학, 제조업, 그리고 기술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미국의 많은 제도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시스템을 보호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두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 하나 흥미로운 차이는 각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배경이다.

시진핑은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최근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 가운데는 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반면 최근 미국 대통령들의 상당수는 법률이나 정치 분야 출신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어느 시스템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배경의 차이가 각 나라가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산업혁명은 미국 권력의 중심을 제조업과 금융이 집중된 북동부(Northeast)로 이동시켰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미국은 산업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내전을 겪어야 했다.

이병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산업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 역시 그만큼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아닐까?

성공한 문명은 언제나 자신을 성공하게 만든 시스템을 지키려 한다.

인터넷은 다시 한번 권력의 중심을 이동시켰다.

이번에는 미국 동부에서 미국 서부의 실리콘밸리로.

하지만 산업시대에 만들어진 많은 제도, 특히 금융과 정부는 여전히 막대한 권력을 쥐고 있다.

그리고 크립토는 바로 그 제도들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만약 돈이 인터넷에 맞는 자산으로 진화한다면, 기존 은행 역시 변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Digital Yuan)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은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디지털 화폐를 바라보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비전이다.

양국 모두 산업시대의 문제는 해결했다.

이제는 디지털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 속에 있다.


Welcome to 각자도생.

디지털 춘추전국시대.

공자왈 맹자왈 등등은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 가는 기틀을 마련했고

아담스미스, 칼막스 등등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가는 기틀을 마련했다면…

우리는 지금 새로운 문명 진화 앞에 새로운 시대적 사상을 원하는걸지 모르겠다.


물론

미국에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빌더(builders)들이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는 뛰어난 창업자와 엔지니어들이 모여 있다.

하지만 미국은 종종 탁월한 개인에게 의존하는 반면,

중국은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은 언젠가 사라진다.

하지만 시스템은 더 오래 살아남는다.


한국을 포함한 소위 서방자유진영에는 아직도 중국을 20세기의 가난한 나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중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 최고의 제조업 국가이자 DJI, Unitree, 샤오미등을 보유한 공학 강국 가운데 하나다.

사실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문명 가운데 하나였다.

종이, 인쇄술, 화약, 나침반.

이 모든 것을 세상에 전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청나라 말기에 산업혁명을 놓치면서 잃어버렸던 G1 자리로 다시 돌아가려는 중국인들의 시도인지도 모른다.


이런 새로운 문명 앞에 미국과 중국만 있는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실험은 전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모든 새로운 문명은 아주 작게 시작한다.

처음에는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시당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된다.

AI는 그 전환의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래가 더욱 디지털화된다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더 이상 단순히 더 뛰어난 AI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디지털 문명의 운영체제(Operating System)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 지점에서 나는 발라지 스리니바산(Balaji Srinivasan)의 주장에 공감하게 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정부와 제도는 산업시대를 위해 설계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디지털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제도 역시 진화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미국은 때때로 자신의 성공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산업시대의 승자였던 사람들과 제도는 그 시스템을 바꿀 이유가 거의 없다.

일론 머스크의 미국정부효율부(DOGE) 프로젝트의 실패 역시 제도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었다.

반면 중국은 수십 년 동안 서구, 일본, 그리고 한국으로부터 배우며 성장해 왔다.

처음에는 값싼 노동력의 제조업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이런 생각마저 든다.

‘중국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기술과 투자는 같은 것이 아니다.

중국 기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결국 중국의 금융 시스템과 중국의 통화를 신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국은 기술 강국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전 세계가 미국 달러를 신뢰하는 것처럼 위안화를 신뢰하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이 중국이 넘어야 할 가장 큰 과제일지도 모른다. 국가적 매력 또는 신뢰와 같은 소프트한 개개인의 신념은 생각보다 만들기 힘들고 단기간에 키워낼 수 있는게 아닌거 같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시각은 다를 수도 있다.

그 나라들은 유선전화를 건너뛰고 곧바로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갔다.

그 나라 사람들은 은행 통장을 만들지 않고 바로 모바일 결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디지털 화폐 역시 선진국보다 더 빠르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다음 글로벌 금융 시스템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문명이 태어나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산업혁명은 세계를 바꾸었다.

디지털혁명은 세계를 또 한번 바꿀 것이다.

앞으로 100년을 결정짓는 것은 최고의 AI를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가장 뛰어난 디지털 문명 운영체제를 구축하는 나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더 이상 좌우진영 논리 또는 최신편향(recency bias)로 점철된 과거 7-80년대식 소련vs 미국과 같은 양강체제경쟁이 아니다.

즉 20세기적 질문인

미국과 중국,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가? 중국 공산당이냐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유진영이냐…?

보다는…

22세기적 질문인

새로운 문명이 만들어지는 이 시대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

해보는것이 개인과 나아가 사회에 이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약

  • 우리는 산업혁명 4.0이 아니라 디지털 혁명 1.0의 시작점에 서 있다.

  • 인터넷은 디지털 문명의 철도를 깔았고, AI는 새로운 생산 엔진이 되며, 크립토는 디지털 시대의 금융·재산권 시스템이 될 가능성이 있다.

  • 앞으로의 경쟁은 AI 자체가 아니라 디지털 문명의 운영체제(OS)를 누가 설계하느냐의 경쟁이다.

  • 미국과 중국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으며, 그 밖에도 다양한 thinker(사상가)들이 tinkering (실험)하는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다

  • 그리고 우리 각자가 던져야 할 질문은 ”누가 이길까?”가 아니라 ”이 새로운 문명 속에서 나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이지 않을까 생각


P.S. 밀리의 서재 앱에서 이병한 작가님 책 두권 (중국 탐사기 & 미국 탐사기) 정독하고 영상들을 보았네요. 오랜만에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들이라 뉴스레터까지 쓰게되었네요. 한국탐사기 내용도 읽고 돌아오겠습니다. Adio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