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공원 잔디밭, 왜 비만 오면 통째로 잠길까
여기 서울에는 1년에 몇 번씩 통째로 물에 잠기는 공원이 있습니다. 한강 공원이죠. 그런데이 공원 물에 잠기는게 사고가 아닙니다. 애초에 잠기라고 만든 땅입니다. 뉴스에서 잠수교 위로 흙탕물이 지나가는 장면을 보셨을 텐데 그때 강 양쪽 공원도 똑같이 물속에 있습니다. 2020년 8월 광나루부터 강서까지 11개 한강 공원이 한꺼번에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잔디밭도 주차장도 수영장도 편의점앞 계단도 죄다 강바닥이 됐죠. 일주일 넘게 이어진 장맛비 때문이었죠. 그런데 물이 빠지고 몇 주 뒤 사람들은 그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치킨을 시켜 먹었습니다. 서울 시민 대부분이 한 번쯤 앉아본 그 잔디밭은 사실 강이 넘칠 때 물을 받아두려고 비워둔 그릇입니다. 강 양쪽으로 41km 넘게 축구장 900개가 넘는 넓이로 이어진이 마당은 평소행 공원이고 홍수된 강입니다.
두 얼굴이 아니라 원래 하나의 얼굴이고 우리가 공원 쪽만 보고 있는 거죠.이 공원의 문제는 딱 한 줄로 요약됩니다. 공원이 아니라 홍수터라는 것. 앞으로 나올 이야기는 전부 여기서 출발합니다. 1960년대까지 한강은 지금과 전혀 다른 강이었습니다. 강운데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졌고 여름이면 사람들이 거기서 헤엄을 쳤죠. 그런데 그 백사장은 여름 장마 때마다 사라졌습니다.
1964년 8월 호그러 한강물이 불어나자 여의도 북쪽 영등포일대가 4월 동안 고립됐고 강변 서지대는 해마다 잠겼고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25년 물충년 대홍수가 있습니다. 이때 잠실 북쪽 색강이 크게 넓어져 물길이 바뀌었다고 전해지고 강남 남북의 마을들이 통째로 쓸려 나갔습니다.이 강은 겨울엔 바닥이 드러날만큼 마르고 여름엔 몇 배로 불어나는 물이 많을 때와 적을 때 차이가 너무 컸던 거죠.
서울은이 강을 끼고 커지고 있었는데 강은 도시를 봐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막았습니다. 1968년 여의도 둘레에 높이 16m짜리 두글 쌓 섬을 물에서 건져냈고 1971년부터는 잠실에 강줄기 하나를 통째로 메워 땅을 만들었습니다. 여의도 두 개 넣을 돌은 밤섬을 폭파해서 얻었고 잠실에서 메우고 남은 강토막은 석천수가 됐죠. 강을 밀어내고 땅을 얻는 방식이었죠.
그런데이 방식엔 함정이 있습니다. 강을 밀어내면 강폭이 좁아집니다. 좁은 물길로 같은 양의 물이 지나가면 수위는 더 올라가죠. 막으면 막을수록 홍수가 높아지는 겁니다. 한장 오시죠. 땅을 얻으려고 강을 좁혔더니 좁힌 강이 더 무섭게 넘칩니다.이 딜레마가 한강 개발의 두 번째 단계를 부릅니다. 그럼 두 높이면 되지 않냐고요? 그것도 안 됩니다. 두 높이는 데는 끝이 없습니다.
두m 높이면 그 위에 또 1m가 필요해지는 경쟁이죠. 강은 끝까지 올라올 수 있지만 죽은 끝까지 올라갈 수 없습니다. 비는 매번 더 올 수 있고 높아질수록 도시는 강을 못 보게 되죠. 강 양쪽에 성벽을 두는 꼴입니다. 게다가 죽이 무너지는 날엔 그 높이만큼 물이 한꺼번에 쏟아집니다. 그래서 서울시는 발상을 뒤집습니다. 물을 막지 말자 대신 물이 넘칠 자리를 미리 비워두자 강이 커질 때 쓸 여분의 강바닥을 도시 안에 남겨 두는 겁니다.
1982년 9월 28일 한강 종합 개발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계기는 1981년 9월에 확정된 88 올림픽이었습니다. 한 달 뒤 대통령이 한강 골제와 고수부지 활용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그게 계획이 됐죠. 4년 동안 연인원 420만 명, 장비 100만 대가 들어간 공사였습니다. 총사업비는 9,억 원이 넘었고요. 홍수 대책이자 올림픽 준비이자 강변 개발이 한 덩어리로 묶긴 사업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턱입니다. 강을 두 단으로 나눴습니다. 평소에 물이 흐르는 낮은 물길 저수로 그리고 그 옆에 한 단 높게 올라간 넓은 땅 고수부지. 고수부지라는 말 자체가 물이 높을 때 잠기는 땅이라는 뜻입니다. 평소엔 마른 땅이지만 강이 불어나면 물이 2단으로 올라와 퍼집니다. 좁은 물길로 억지로 밀어넣는 대신 넓은 마당으로 펼쳐 놓는 거죠. 물이 넓게 퍼지면 수위는 덜 오릅니다.
같은 물을 컵에 부으면 높이 차오르지만 쟁반에 부으면 얇게 퍼지는 것과 같은 이치죠. 한강 서울 구간을 컵에서 쟁반으로 바꾼 겁니다. 고수부지라는 한자원은 나중에 둔치라는 우리말로 바뀌었지만 뜻은 그대로입니다. 물 높을 때 잠기는 땅. 아까 강을 좁혀서 홍수가 높아졌다고 했던 그 문제를 여기서는 강을 넓혀서 풉니다. 다만 그 넓은 부분을 평소에 놀려두지 않고 공원으로 쓰는게 서울의 계산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흑입니다.이 마당을 어디서 가져왔느냐? 강바닥에서요. 암사동에서 행주대교까지 36km 구간에 강바닥을 판내 물기를 고르고 수심을 2.5m로 맞췄습니다. 36km면 서울시내 한강 구간을 끝에서 끝까지 전부 손된 겁니다. 강폭은 650m에서 900m 사이로 정리했고요. 파낸 양은 수천만세 트럭으로 세면 엄두가 안 나는 양이었죠.
그렇게 파낸 모래와 자가를 강 양쪽에 쌓아 고수부지를 돋았죠. 강을 파서 강 옆에 붙는 겁니다. 파낸 골째 일부는 건설 현장에 팔아 공사비에 보했다고 전해집니다. 강바닥이 공사 재료이자 공사비였던 셈이죠. 그리고 그 위에 13개 지구 694만 개의 고수 부지를 만들고 시민공원을 얹었습니다. 강동 하일동에서 강서 개화동까지 41.5km 5km 구간이요.
강변 위로는 올림픽대로가 깔렸고요. 행주, 양화, 마포, 여의도, 한강대교, 한남대교, 뚝섬, 잠실에 선착장이 놓였고 잠실대교와 광진교 사이엔 수상스키장, 광나루엔 요트장이 들어섰습니다. 유람선이 다니기 시작한 것도 이때입니다. 1986년 9월 10일 아시안 게임을 2주 앞두고 중공됩니다. 2년 뒤 올림픽 때 세계에 보여준 한 강이 바로이 모습이었죠.
잠실과 김포에는 물속에 잠긴 볼을 놓아 평소 수위를 붙잡았습니다. 강이 마르지도 넘치지도 않게 위아래 선을 그은 겁니다.이 두 줄 사이가 지금 우리가 아는 한강입니다. 세 번째는 약속입니다.이 공원은 잠긴다는 걸 전제로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잠기면 안 되는 건 여기 두지 않습니다. 집도 학교도 병원도 없죠. 있는 건 잔디밭, 자전거길, 운동 기구, 주차장, 수영장, 매정.
전부 물이 빠진 뒤 씻어내면 되는 것들입니다. 공원이 잠길 때 서울시가 한일은 막는게 아니라 비우는 겁니다. 강변 아파트는 툭 바깥에, 사람이 사는 건 전부 툭 뒤에 두고 안쪽 마당엔 잠겨도 되는 것만 놓는 식이죠. 그래서 한강에는 물가에 바짝 붙은 집이 없습니다. 물가 첫 줄은 언제나 비어 있어야 하니까요. 한강 수위가 오르면 공원을 통제하고 사람을 내보내고 물이 들어오게 둡니다. 없애는게 아니라 길을 정해 준 겁니다.이 약속이 한강공원의 운영 규칙 전부입니다.
그 규칙의 신호등이 잠수교입니다. 한강수위 5.5m면 잠수교 보행이 막히고 6.2m면 차가 막히죠. 어, 잠수교가 잠긴다는 뉴스가 나오면 한강 공원 저지대도 이미 물속이라고 보면 됩니다. 다리 하나와 공원 11개가 같은 물을 보고 같은 순서로 문을 닫습니다. 2024년 7월에도 열흘 사이 잠수교가 세 번 막혔고 그때마다 강변 저지대 산책로부터 물이 올라왔죠.
그 약속이 가장 크게 시험받은 해가 1990년이었습니다. 9월 9일부터 나을 동안 한강 규역에 평균 452mm가 쏟아졌죠.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 가장 큰 비었습니다. 한강대교 수위가 11.27m를 찍었고 잠수교 쪽은 13. 7m까지 올라갔습니다. [음악] 잠수견은이 해에만 일곱 번 잠겼죠. 고수부지는 당연히 전부 물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서울 도심은 버텼습니다.
물이 올라올 자리가 있었으니까요. 하류 행주대교 부근에선 북쪽 재방이 무너져 고향일 때가 잠겼습니다. 물을 받아둘 마당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차이가 그 해에 드러났습니다. 완공 4년 만에 시험이었고이 마당은 그 뒤로도 매년 같은 시험을 치릅니다. 처음 만들 때 고수부지 비탈에는 콘크리트 블록을 깔아 흙이 쓸려가지 않게 했습니다. 그러다 2007년 한강 르네상스 사업부터는 그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흑과 풀을 심은 자연형 호환으로 바꾸기 시작했죠.
물이 오면 풀이 눕고 물이 가면 풀이 다시서는 방식입니다. 딱딱하게 버티는 대신 부드럽게 잠기는 쪽으로 한 번 더 기운 겁니다. 그리고 2020년 8월이 옵니다. 장마가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팔당댐과 소양강 댐이 초당 수만 톤을 쏟아냈고 8월 6일 오전 11시 한강 분류의 홍수 주의보가 내렸습니다. 서울시는 그 시각 11개 공원 전체에 통행을 막았고 비가 그쳐도 복구가 끝날 때까지 들어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천변은 물이 빠진 뒤에도 위험하니까요. 광나루, 잠실, 뚝섬, 잠원, 이촌, 반포, 망원, 여의도, 난지, 강서, 양화 11개 공원이 전부 통됐습니다. 잠수는 이해에 232시간 열흘 가까이 물 속에 있었고요. 물이 빠진 뒤 공원에 남은 건 뻘이었습니다. 생태공원 나무가 쓰러지고 자연학습장 작물은 폐기 대상이 됐고 운동 기구는 베어링 속까지 뻘 있었죠.
주차장엔 떠내려온 쓰레기가 깔렸고요. 서울시는 피해 원인이 끝난 뒤 20일 안에 완전 복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광장과 아스팔트는 물차와 스키로드로 씻어내고 흑길과 잔디와 나무 데크는 양수기와 사람 손으로 원래대로 돌려 놓는 시기였습니다. 물이 빠진 뒤에도 공원문은 한동안 다혀 있었죠. 잠기는 시간보다 씻어내는 시간이 더 긴 겁니다.이 복구가 한강 공원의 진짜 얼굴입니다.
11개 공원에 생태 공원 여섯 곳, 녹지만 개, 나무 442만 그룹, 체력 단련장 78곳, 놀이터 18곳, 수영장 여덟 곳, 주차장 43곳이 전부가 잠길 수 있고 잠기면 씻어냅니다. 매년 여름 똑같이요. 그 비용을 서울시는 공원 유지비에 일부러 칩니다. 한번 잠기면 끝나는 공원이 아니라 잠기고 복고하는게 운영인 공원인 거죠. 아까 잠기는게 사고가 아니라고 했던 말이 여기서 증명됩니다.
그런데이 공원은 여름 홍수만 겪는게 아닙니다. 2024년 4월 어느 저녁 비도 안 왔는데 반포 한강공원 수변 무대에 물이찼습니다. 발목 10cm 정도였죠. 원인은 바다였습니다. 인천 앞바다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밀이 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겁니다. 김포 신국수중보가 밀을 막아주지만 조수가 높은 날엔 물이 볼을 넘어오거든요. 그러니까 한강 공원은 위에서 오는 물과 아래 오는 물을 동시에 받는 마당입니다.
그래서 서울시는 11개 공원마다 한강 보안관을 두고 사조 이교대로 24시간 순차를 돌립니다. 물이 언제 올지 재는 사람을 상시로 세워둔 거죠. 그래도 구멍은 있습니다. 2022년엔 공원에 있던 시민들이 불어난 물에 고립되는 일이 있었고 서울시는 안전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잠기라고 만든 땅에 사람을 드리는 이상 물이 오기 전에 사람을 내보내는 일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숙제입니다. 지금도이 공원은 잠깁니다.
앞으로도 잠길 겁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공원이 실패하는게 아닙니다. 설계도대로 작동하는 겁니다. 강이 불어나면 물은 저수로를 넘어 고수 부지로 올라오고 도시는 그만큼 덜 잠기고 [음악] 물이 빠지면 뻘를 씻어내고 잔디를 다시 un니다. 1986년 중공인이 올해로 꼭 40년 매년 이순서를 반복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마당에서 라면을 끓이고 자전거를 타지만 그 마당의 첫 번째 직업은 홍수를 받아주는 겁니다.
공원은 두 번째 직업이죠. 순서가 바뀐 적은 없습니다. 그 마당이 물을 받아주는 동안 독 뒤에 도시는 젖지 않습니다. 서울은 이런 식으로 일합니다. 석천호수는 세는 걸 막지 않고 세는만큼 붙고 잠수는 잠기는 걸 막지 않고 잠기는 나를 정해두고 한강공원은 넘치는 걸 막지 않고 넘칠 자리를 비워둡니다. 적을이기는 대신 적한테 자리를 내주고 그 자리를 평소에 빌려쓰는 방식이죠.
그 빌린 자리에서 서울 사람들은 옷마다 벚꽃을 보고 여름마다 물이 빠지길 기다리고 가을마다 다시 도자리를 un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잠기는 공원을 어떻게 했느냐? 서울은 물을 막지 않았습니다. 강을 파서 마당을 만들고 마당을 공원으로 쓰고 물이 오면 비우고 물이 가면 씻었습니다. 홍수를 막는 벽을 세운게 아니라 홍수한테 자리를 내주고 그 자리를 평소에 빌려쓰는 겁니다.
서울의 한강 공원은 이렇게 탄생한 겁니다.
